Feat. <바다를 보는 법> <아티스트 웨이> <이카루스 이야기>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릴까?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것인가? 평소 못 가봤던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남자는 산과 바다를 쏘다닌 끝에 깨닫는다. 산은 산이고, 바다는 바다인 것을. 버킷리스트를 만든 사람도 결국 시한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리라 추측을 한다. 죽음을 앞둔 그는 다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는 버지니아울프의 <등대로>를 떠올리다 자신의 미완성 희곡이 생각난다. 결국 무대에 올리지 못한 이야기. 그것을 고쳐볼까 하다가 무의식이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배우가 되고 싶다는 시한부 인생에 말도 안 되는 꿈이 마음속에 피어오른다. 그렇게 그는 극단을 시작한다. 미완성의 이야기는 연극 동아리를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아간다.
정용준 작가의 <바다를 보는 법>은 2024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에서 맨 마지막에 실린 작품이다. 읽고 묵직한 울림을 느끼며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 본다. 고요.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을까? 미완성의 연극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아가게 한 작은 고요.
그는 고요 속의 외침을 듣는다.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열망, 배우가 되어 육성으로 말을 전달하고 싶다는 깊은 열망.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깊은 열망은 극단의 끝에 갔을 때에만 들려준다.
하루도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 날이 없는 현대인에게는 고요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게다가 무의식이 건네 오는 말이 고요와 상반될 경우,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 직관과 반직관 사이에서 방황과 번뇌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 방황과 번뇌를 멈추고 난 후에야 우리는 제대로 된 무의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산과 바다, 계곡 등 여행지와 맛집을 탐방하고 나서 산은 산이고, 바다는 바다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생계를 위해 그만두었던 연극을 다시 하고 싶다고, 이번에는 연극을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배우도 하고 싶다고.
바다는 항상 같은 모습이다. 저 수평선 끝에 언제나처럼 하늘이 있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는 갈매기가 난다. 파도는 모래에 부딪히며 파도소리를 내고, 창을 뚫고 들어오는 파도소리에 쉬 잠들기 힘들다. 파도소리에 깨 다시 선잠을 자다가 지평선 너머로 밝아오는 아침노을에 마음의 불안이 가라앉는다. 바다 위로 올라오는 빨간 해는 구름으로 번지며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바다는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었다. 태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히 같은 모습일 수가 없다. 바다위로 떠가는 구름은 무한대의 모양으로 떠오를 것이며, 그 위론 산란하는 빛이 바다로 번져 또 다른 빛깔을 낸다. 때로는 붉게 때로는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겨울이 시작되며 무기력과 우울감이 이따금 찾아왔고, 아이들 방학에 삼시세끼를 차리다보면 짬을 내기도 힘들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떠난 바다여행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비로소 쉼을 가졌을 때 다시 글을 써볼 여유가 생기고 영감이 떠올랐다.
무의식에서 끊임 없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며 생각난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일어나자마자 모닝 페이지 3장을 쓰라고 제안한 그녀는 그와 함께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라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변호사에게 개인 교습을 하며 그녀는 모닝페이지 3장과 아티스트 데이트를 제안했지만, 그는 도저히 그럴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단호하게 변호사에게 말한다. 작가가 되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그러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며 삶이 예술이 되는 방법은 무한대로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의 경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든 마케터에게 “아티스트가 되라”고 했던 세스 고딘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아티스트를 '기본 질서에 도전하는 용기와 통찰력, 창조성과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와 함께 제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욕 언론사에 다니던 제니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다. 그녀는 작가가 되길 원했다. 이미 그녀의 글쓰기 실력은 뛰어났지만 출판한 책은 없다. 10년 동안 제니는 남편과 함께 모든 요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나중에는 두 자녀까지 합세한다. 그리고 세상에 책을 내놓아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제니가 선택한 것은 블로그(이름하여 '저녁 식사: 사랑 이야기')였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인맥도, 화려한 기술도, 자본도 없다. 가진 거라고는 자기 자신과 글뿐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방문자와 관계를 맺고,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을 시작했다.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2년 만에 한 출판사에서 출판제의를 받았고, 책이 나오고 사흘 만에 미국 시장 베스트셀러 요리책으로 떠올랐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해서 출판 제의를 받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수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느낀 것은, 수익이 없어도, 굳이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거였다. 그러고 다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아름다운 것 투성이었다. 아직 공사 중인 집 근처 공원의 길고양이도, 새삼 시끄러웠던 까치도, 앙상한 나뭇가지로 겨울을 나던 나무도.
물론, 아트는 즐거운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자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이 저항이 창조의 속성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창조일 것이고, 그러기에 한발 물러서면 더 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항을 부정적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환영할 필요가 있다. 저항은 아트의 그림자이며, 아트가 없으면 저항도 없다.*
* 참고문헌
<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
<바다를 보는 법> 정용준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