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꾸는 시간

Feat.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

by 모몽

자고 일어나서 바로 이불 정리하기.

아침에 휴대폰보다는 뒷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차분히하기.

아이 등교 전에 내가 먼저 양치질하기.(웬만하면 아이가 간 다음에 양치질을 했었다.)

아이의 인사말에 관대해지기.(다녀오겠습니다, 대신에 아이는 갈게요, 라고 인사한다.)

몸무게 재어보는 횟수 줄이기.


오늘 아침에만 내가 실천한 목록이다.


'어두운 숲길을 단체와 함께 걸었다' 작가가 제안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1도씩 수정하기다. 불면증이 짧게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아니면 계절마다 재발했었다. 의사 상담을 받아도, 그 나이쯤이면 그럴 수 있다는 말에 병원 발길도 끊었다. 하지만 잠을 못 자고 나면 그 후폭풍이 가장 무섭다. 관절염이 재발을 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늘면서 소화불량이 심해진다. 그러다 살이 빠지기 시작한다. 다시 잠을 잘 자기 시작하면서 관절염도 나아지고, 빠졌던 살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통잠을 잤다. 지난 여름, 더워서 깨기도 하고, 소화불량 때문에 깨기도 했었다. 관절염이 심할 때는 잠에서 깨 여기저기 쑤셔 잠이 안 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여름의 막바지에 단테를, 마사 벡을 만났다. 오늘도 깨고 나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 서핑을 하려다 마사 벡 작가가 제안한 '삶의 방향 1도씩 수정하기'가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썼던 노트를 다시 펼쳐봤다.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라고 말한다. 그렇게 책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난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끄잡아낸다. 다시 화가 나고 분노하고, 그러다가 '단테' 그리고 '마사 벡'의 코치 아래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단테의 <신곡>에서 사용했던 구조를 토대로 온전함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렇게 '어두운 숲'에서 시작된 여정은 '지옥'까지 들어갔다가 '연옥'에서 정화(purgatory)를 거쳐 '천국'으로 나아간다.


하나로 갑자기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는다. 난 다시 일상에 지쳐 불면증이 찾아왔고, 어두운 숲에서 헤매였다. 하지만 그 어두운 숲에서 헤매고 난 후에 찾아왔던 무기력감 대신에 '삶의 의지'가 채우는 것을 느낀다. 내 삶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지만 나는 조금씩 달라져 있다. 삶의 방향을 1도씩 바꾸기를 떠올리며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비난과 방어보다 창의적인 대응에 집중할 때 두려움은 점차 작아진다. 두려움은 교만, 질투, 분노의 이면으로 점차 밀려나고 그 자리엔 건강한 자존감, 충만함, 긍정적인 변화 의지가 자리 잡는다.


직장을 그만두면 불면증의 원인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대입을 준비하면서는 대학만 들어가면, 취직 준비를 할 때는 취직만 하면. 하지만 세상에서 우리를 잠 못들 게 하는 이유는 수만가지가 될 수 있었다. 이제와 깨닫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는 온전한 삶으로 가는 것, 그것만이 불안과 우울의 시대를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책을 따라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편까지 다다랐지만 책을 닫고 다시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천국과 지옥이 오가는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불안의 강도는 줄어든다. 책을 한 권 읽고, 내 자신을 성찰한 후에 마주하는 세상은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고층 아파트 사이를 걸으며 뜨거운 햇살아래 녹아내릴 것만 같던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떠 가는 모습에서 청량함이 느껴진다.


그 아래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김이 올라온다.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깝다. 하지만 조금만 더 눈을 돌리면 아파트 뒤로 나무가 빼곡한 산이 보인다. 그 위를 떠가는 구름, 풀벌레 소리. 잊고 있었던 작은 기쁨들에 내 마음을 돌리니, 다시 무언가 쓰고 싶다는, 다시 꿈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