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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Nov 04. 2024

39_내가 할 수 있는 것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눈에 띄는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요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한 여성 코미디언이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이었다. 예전부터 그녀의 팬이었던 난 반색하며 영상을 시청했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한 수많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어떤 계기로 코미디언이 되었는지, 방송과는 다른 실제 성격은 어떤지 등을 진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내 입가에는 미소가 가실 틈이 없었고, 가끔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영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자 봉사가 개그라고 하면서 예전에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어느 날 자신에게 DM이 왔는데, 한 아버지가 소아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냈다고 한다. 영상 속에서 아이는 항암치료로 힘든 와중에도 그녀의 방송 속 모습을 따라 하며 밝게 웃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들을 웃게 해 준 것에 감사를 전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아이 덕분에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순간 불현듯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퇴근길에 바라본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특히 동작대교를 건너면서 지하철 창밖으로 바라본 한강과 여의도의 고층 빌딩, 그리고 붉은 노을이 만들어낸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경이로웠다. 난 홀린 듯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촬영했고,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문득 내가 쓴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하늘은 서쪽부터 서서히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회색빛 먹구름만이 가득했던 아침의 하늘과는 완전히 다른 아름답고 경이로워 보이는 하늘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낸 나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_「보통의 하루」 중(『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2021)


난 괜히 감상에 젖어 동영상과 소설 구절을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올렸다. ‘퇴근길에 이런 하늘을 마주하게 되는 건 확실히 특별하고도 감사한 순간이다. 마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것처럼’이라는 조금은 오글거리는 문장과 함께. 팔로워도 얼마 안 되는 인기 없는 계정이었지만 아무도 안 보면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게시물을 올린 뒤 혼자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오랜만에 업데이트한 게시물에 놀랍게도 답글이 달렸다. 내가 모르는, 심지어 팔로워도 아닌 분의 답글이었다. 답글의 내용은 이랬다. 내가 올린 글과 사진을 보니, 오늘 아이의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인 눈부신 파란 하늘이 일주일간 잘 견뎌낸 아이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이었던 것 같다고. 아름다운 문장과 사진 잘 봤다고.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답글을 보고 난 뒤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 안에서 무언가 크게 일렁였던 것만 기억난다.


난 답글 속 아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쉽지 않은, 아니 고통스러운 아픔과 치료일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과 고통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에게도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분명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만나게 된 나의 글, 나의 소설이 그들에게 파란 하늘이라는 어쩌면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선물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난 항상 나의 글이 부끄럽다고 느끼고,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력과 완성도에서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내 글을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내 글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쓰고 있는 에세이는 물론이고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소설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겪은 경험,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이 오롯하게 바탕이 되었다. 변형과 왜곡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나의 슬픔과 아픔, 불안과 두려움, 욕망과 질투, 분노와 치졸함이 적나라하게 녹아있다. 그래서 나의 글을 보면 발가벗겨진 내가 보이고, 그런 나의 글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럽다. 그런데 이렇게 부끄러운 글이 때때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고,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면 난 벅차오르는 감정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 감정은 기쁨과 감사함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건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겸허함과 더 진실해져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그녀가 자신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개그)이라고 한 것처럼,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작고 약할지라도 독자들의 내면에 울림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이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당시 게시물을 읽고 소중한 답글을 남겨준 분에게 감사드린다. 부디 지금은 아이와 함께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_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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