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_독립출판 장돌뱅이 3

by 주얼



나는 올해 2월 마포에서 <각양각책북페어>를 시작으로 지난 12월 1일 부산에서 <마우스북페어>까지 1년 동안 모두 14개의 북페어에 참여했다. 참여일 수는 총 32일이었는데, 2월부터 11월까지 열 달 중 한 달은 북페어 행사장에서 책을 팔고 있었던 셈이다. 행사 장소는 서울의 홍대, 남산, 성수, 코엑스를 비롯해 안산, 대전, 구미, 광주, 대구, 부산까지 전국 각지였고, 이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직선거리로 어림잡아도 4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비행기를 타도 5시간 가까이, 자동차로 이동한다면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도 이틀 가까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이다. 직장인으로 살 때는 업무차 서울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었던 난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많은 북페어에 참여한 만큼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판매량도 기록해 보았고, <부산북앤콘텐츠페어>에서는 준비했던 도서를 모두 판매하는 소위 ‘완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3일 동안 단 한 권도 팔지 못한 행사도 있었다.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행사가 있던 반면, 방문객보다 셀러 수가 많은 행사도 있었다. 참여한 셀러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행사도 있었고, 이렇게까지 챙겨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행사도 있었다. 극과 극을 오가는 행사를 겪으며 기분도 만족과 불만족, 행복과 불쾌를 마구 오락가락했다.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에 힘들어하며 깨달은 건 무엇보다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 결국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고 초연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페어에서 격려와 응원을 받기도 했다. 따로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고 행사장에 찾아온 지인들, 그리고 온라인에서만 만나다 행사장에서 만난 문우들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내 책 한 권을 사간 후 너무 좋았다며 다시 찾아와 다른 책을 산 분이나 가만히 책을 보시다가 문장이 좋다며 4종을 한꺼번에 산 분은 그 행위 자체로 내게 큰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내 책을 눈여겨보시고, 펼쳐보시고, 읽어주시고, 구매해 주신 수백 명의 감사한 분들이 계셨다. 사실 북페어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기다림의 시간은 필연적으로 피로감과 무력감을 수반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모든 분의 다정한 마음 덕분이다.


한 북페어에서의 예기치 못한 만남은 내게 계속해서 소설을 쓰게 만드는 용기, 그리고 써야만 하는 의지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북페어에서 있던 일이다. 내 부스에서 책을 구경하던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책 중 한 권을 독립서점에서 구매해 읽어보았는데 좋았다고, 그래서 다른 책도 사고 싶다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전하며 그녀에게 나의 다른 책을 추천해 주었다. 추천받은 책을 사간 그녀는 잠시 후 웬일인지 다시 부스로 돌아왔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사실 자신은 예전에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언젠가부터 흥미가 사라져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그러다가 내 소설을 읽은 후 흥미가 생겨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고. 내 소설 덕분에 다시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녀가 일부러 다시 찾아와 전해준 진심은 내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반짝일 빛으로 기억되었다. 그 빛은 내가 언젠가 방황하고 헤매는 순간이 오면 분명 변치 않는 이정표이자 등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계속해서 소설을 향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인도할 것이다.




1년간 정말 열심히 장돌뱅이 생활을 했다. 북페어에서 마주한 아쉬웠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슬펐던 순간, 그리고 기뻤던 순간은 모두 뜻깊은 경험이자 자산이다. 워낙 소심하고 게으른 성격 탓에 부스에만 있던 내게 먼저 찾아와 인사를 건네준 동료 창작자들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무명작가의 소설을 망설임 없이 선택해 주고 기꺼이 응원해 준 선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온기 어린 다정함이다. 이 모든 것이 장돌뱅이였기에 누릴 수 있었던 축복이다.


북페어에 동행했던 동료와 자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에는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하는 북페어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불만족스러웠던 북페어는 참가를 재고해 보자고. 투자되는 시간과 비용, 노력을 생각하면 성과가 좋은 북페어를 선별해 참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면 분명 난 쉽게 선택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순간이 되면 아쉽고 힘들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를 것 같다. 판매량의 많고 적음보다는 단 한 분이었더라도 내게 전해준 온기가 더 중요해질 것 같다.


그렇다. 분명 난 다가오는 2025년에도 내가 참가할 수 있는 모든 북페어에 참가할 것이다. 힘들고 괴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다시 한번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고도 충만한 마음으로 존재하게 하고 쓰게 만든다는 것을 믿는다. 독립출판 장돌뱅이의 삶, 그건 바로 소설을 쓰는 나의 삶이다.



_20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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