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점집에라도 가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직장 주변에는 유난히 색색의 천이 매달린 대나무가 서 있는 곳이 많다. 영으로 본다는 보살님들이 많이 있는 것은 이곳 터가 세기 때문이라 했던가. 무등산이 가까이 있고 예전엔 이 근처가 공동묘지였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가끔씩 앞날이 캄캄할 때 점이라도 보면 내가 어찌 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승진에 미끄러진 직장인들이 모두 나와 같진 않을 테지. 그러나 나는 이 직장에서 왜 늘 뒤처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지... 늘 같은 고민이지만 또 늘 제자리 고민이기도 하다. 스스로 선택이 어려워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지 보살님 이야기라도 듣고 싶다가도, 그런 데서 괜히 안좋은 얘기 듣고 나면 찝찝하기만 할 뿐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타고난 운명 따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며 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지인들 중에도 연초에는 반드시 신년운세를 보러 가고 큰 일을 앞두고서는 꼭 철학원이나 점집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곳을 몇 번 방문하다 보면 단골집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의 말을 믿으며 때로는 안심을 하고 또 때로는 조심을 하기도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안정감을 얻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내게도 용한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으나, 나는 늘 내 어깨에 누가 걸쳐 있다고 하면 어쩔 거냐는 농담으로 거절하곤 했다.
이번 인사에 누가누가 승진을 한다더라고.. 내 눈치를 보아가며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티타임을 끝내고 왔다.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으면서도 나는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았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할 바가 없으니 인사에 관심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괜찮은 척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였다. 전혀 괜찮지가 않았으니까.
남아서 버틸 힘이 없다. 뛰쳐나갈 용기가 없다. 그래서 기운이 빠진다. 지금껏 이런 기분을 충분히 반복한 것 같다. 그런데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
남편과 아이와 떨어져 세 집 살이를 하고 있던 시절, 그때 나는 천안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광주에 갈 방법이 있으려나,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갈 수 있으려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인생이 한없이 한탄스럽던 날, 그때도 점을 보러 가고 싶었다. 어디라도 묻고 싶었다. 저 위에 계신 누군가... 그래도 이 복잡한 세상을 굴리고 있는 어떤 존재가 진짜 계시지 않나 싶어, 그분의 뜻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찾아간 곳은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앞 타로카드집. 인사가 5~6개월 정도 남은 때, 타로카드를 봐주던 젊은 여성은, 이사운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타로카드점은 최고 6개월 안의 일만 점칠 수 있는데 그래도 보겠느냐 하였다. 어차피 믿지도 않는데 봐달라 하였다. 그러나 정말 믿지도 않았지만, 점괘의 효과는 6개월 안의 일 뿐이라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6개월 안에 나에게는 이사운이 없다고 하는 거였다. 에잇, 괜히 봤어. 기분만 나쁘잖아. 툴툴거리면서도 6개월 내라 했으니 인사가 조금 늦어지기라도 하면 결과는 다를수 있다고 애써 자신을 달래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다시는 점 같은 거 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동안은 내가 좀 살만했었나 보다. 이렇게 점을 보고 싶은 마음이 꽤 간절해지는 걸 보니, 그동안은 그래도 썩 참을만했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오늘, 어떤 핑계를 대봐도 전혀 위안이 안된다. 멘털이 몹시 흔들린다..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호흡을 해도 영 가라앉혀지지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라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싶다.
사람들이 점을 보러 가는 것도 아마 지금의 나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내 선택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고자 하는 욕망....
어쩌면 나는 내가 지금보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이렇게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을 갖지 못해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일지도, 내가 노력한 것 이상을 바라는 욕심일지도 모르니.
그것이 욕심인지 깨닫고자, 혹여 진실로 욕심이더라도 결국은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고자, 나는 또 노력해야겠다. 더 치열해져야 할지 더 내려놓아야 할지, 매 순간 선택은 의미 없이 자연스러워야 할지 신중한 고민이 되어야 할지, 더 계산적이어야 할지 염치가 있어야 할지, 가벼워야 할지 아파야 할지, 어차피 남은 시간들은 온통 노력해야 할 숙제들 뿐이라... 혹여 보살님이 답을 준다 한들 나는 그것을 믿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를 또 고민하게 될 것이라...
나의 선택은 결국 나의 몫이고 나의 숙제이다. 숙제가 풀리지 않아 얼마간은 또 많이 괴로울 것임은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