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는 일

by 강주은

요즘은 자주 작업을 하다가 Del버튼을 누른다. 주로 디자인 작업이 거의 다 완료될 때 그런다. 꼭 필요한 핵심 요소들만 남기고, 아름다움을 위해 넣은 나머지 디테일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식이다. 요즘하고 있는 작업의 클라이언트가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시작한 이후로 내 작업은 디테일과의 전쟁이었다. 우선은 비주얼로 목적을 표현하고, 정보를 한눈에 들어오게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퀄리티를 좌우하는 건 결국 작은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인지도 안 되는 작은 요소들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입체감을 형성한다. 단색으로 쓸 수 있는 것에 몇 번의 브러시 터치로 미묘한 차이의 그라데이션 넣거나 글자나 박스 주변으로 그림자나 광선을 넣는 것이 그렇다. 아니면 굳이 필요 없는 테두리나 글자들을 넣는다.

디테일을 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허전해서다. 비어 보이지 않도록 채워야 완성도 있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디자인을 더 잘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도 내 디자인이 더 이상 수정 없이 컨펌되기 위해 디테일을 어떻게 더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디테일을 올리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새로운 클라이언트에게 맞추기 위해 디테일을 지우는 작업을 하니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 익숙지 않아서 내 작업 방식대로 다 만들어 놓고 디테일을 하나씩 지워갔다. 이 요소가 포인트이지만 지저분하다고 하겠지, 살짝 그라데이션이 들어가야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데 단색으로 해달라고 하겠지, 이 배경 위에 일러스트 요소가 들어가면 더 신나는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워달라고 하겠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슬프지만 클라이언트를 이해한다. 어떤 클라이언트는 화려한 비주얼로 첫인상을 사로잡길 원하지만, 이번 클라이언트는 오히려 깔끔하고 명료한 정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기획에 자신이 있는지도 모른다. 시각적 장치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기획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이 혜택 정보를 보면 당연히 참여하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는 생각이 아닐까? 그렇게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하나씩 지워간다.


매일 무언가를 지우다 보니, 덜어내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다른 요소에서도 이렇게 덜어낼 것은 없을까란 고민이었다. 덜어내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보다 허전해지고 단출해지지만, 그만큼 명확하고 단순해지는 기쁨이었다.


무언가를 덜어내면 낼수록 남은 것들이 강조된다. 그것을 나의 관계에 시도했다. 나는 회사와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대학시절을 보낸 지역에서 살다 보니 종종 보는 사람들도 많다. 내 성향은 내향적이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일이 잦았다. 좋은 사람들과 유익한 모임들이지만 덜어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와 만나는 이 사람이 소중하고, 이 시간은 정말 즐겁지만 만남이 잦아지니 얼른 해치워야 할 일들로 변해갔다. 피로해지니 한 번의 만남에 집중도가 떨어지고 한 사람의 소중함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내 인생에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이 뭔지 고민했다. 다 좋은 사람들이고 만나면 기분이 좋지만, 내게 정말 소중하고 오래갈 인연은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다. 그래서 그 목적에 맞는 모임만을 나가기로 결정했고,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우선으로 했다.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회사와 교회에서도 꼭 만나야 할 경우가 아닌 이상 가능한 한 접점을 줄이려고 했다. 새로운 경험이 줄어드는 건 아쉽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하니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관계만이 남으니 더 행복해졌다. 디테일을 덜어냈을때처럼, 남겨진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더 뚜렷이 다가왔다. 나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더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 인생에 그들이 더 진한색으로 다가와 나를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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