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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Sep 03. 2023

0903

제 가을을 종종 여기에도 남겨둘게요.

노트를 선물받고 어떻게 해야 더 만족스럽게 이 칸을 채워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짬뽕노트로 사용하기로 했다. 일기도 적고, 낙서도 하고, 일 하다 떠오른 생각도 적고, 누군가에게 주고자 하는 편지의 초안도 적고.. 브런치라는 공간도 그렇지만, 새 노트도 그런 것이. 마음에 드는 글들로 채워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에 한두 글자 대충 지껄이는 게 잘 안됐었는데, 떠나갈 생각들을 조금은 더 편하게 활자로 붙잡아 두는 것,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하튼 그리하여 가을의 시작에 이 노트를 시작해 본다.. 몇 년 전 메모에 썼던 글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십 대 후반의 주은은 이맘때를 사랑을 하거나 또는 사랑을 그만두어야 하는 때라고 기록해 두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이 계절을 어중간하게 얼타다 흘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매번 가을 때마다 구체적인 실체 없는 다짐을 해본다지만, 어쩐지 가을의 정취에 퐁듀처럼 푹 담궈져 찌르르 했던 경험이 제법 아득하게 느껴진다. 분명히 있었을 그 순간들을 믿지만,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나의 기억 저장소에서까지 한 자리 꿰찰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나 보다.. (사실 30대가 되어 기억력이 퇴화된건지.. 자극의 역치가 높아진건지 무튼 기억의 양과 질이 모두 후퇴하긴 함..) 

 당분간 2023년 가을을 가늘의 기분을 잉크에 담아 꾸준히, 지각하지 않고, 매일 기록하는 것을 하루의 마무리 시간으로 할애하기로 한다. 좋은 것 나쁜 것 할 것 없이 옮겨다 놓고, 서늘한 바람 줄기에 쥐었던 손을 펴 떠나보낼 수 있게.



-28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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