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교적 짧은 기록들 - 마음

by 주은

#1


서로가 말랑하고 뭉뚝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경우, 다치지 않는다.

둘 중 다른 한 명이 딱딱한 벽을 세운 경우 말랑한 쪽이 뭉개진다.

두쪽 다 딱딱한 벽이라면, 둘은 닿지 않는다.

오른손에는 말랑한 것을 들고, 왼쪽에 벽을 둔 채 상대방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 살핀다.

나는 말랑이를 내밀 작정이었는데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벽의 모양새라면 손을 바꾸어 버린다.

상대도 내 눈치를 본다.

어쩌면 말랑이인채로 만날 수 있었던 몇 쌍의 마음들이 이렇게 벽이 된 채 끝이 났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벽을 택했던 닿지 못한 인연들에게는 사실 묻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다시 처음 만나던 거리로 돌아가 정확한 타이밍에 말랑이를 환하게 들어 보여주고 싶다.

운도 필요하니까 신의 도움도 살짝 받아본다.

그랬으면, 우리 지금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을지.




#2


또다시 지난번의 효창공원 카페에 왔다.

(중략)

이곳에 두 번째 방문만에 장소 애착이 생겨버린 것 같다.

오랜만에 소진 언니를 만나고, 두 번 다 민소매에 같은 향수를 뿌리고 온 곳. 그것이 스스로 어릴 적 로망이던 커피프린스 한유주 같아서 어른인 척 행동해본 곳. 그즈음 내가 신경 쓰던 애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곳. 젊은 사람과 노인들이 통유리창 밖으로 지나다니고, 시야에서 느껴지는 시끄러울 것 하나 없는 동네 분위기.

거창하지는 않지만 서른 즈음의 어느 하루로 기억하기에 충분히 따뜻한 공간이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십 년을 더 살아 오십 살쯤이 되었을 때는 이런 애착 장소가 아주 많아져 전국 방방 곳곳 어디에서든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때도 위로가 필요한 마음일까. 그땐 이 카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라는.. 그때가 되었을 때는 기억하지도 못할 물음 거리들.

사실 내가 타임머신에 가장 넣고 싶은 건 이런 것들이다.

옛날의 주은이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미래의 주은은 다 까먹어 버렸을 것 같은 기억들, 장소, 습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시덥지 않지만 그토록 중요했던 고민들.

오늘 이곳에 이십 년 후에 대해 적었으니, 이 질문은 그래도 다시 읽히게 될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이십 년 후의 나는 전국구로 활동 반경을 넓혔는지, 여전히 위로가 필요한지,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 미래의 내가 놓치지 않고 대답해 주길 바란다.




#3


손해 좀 보더라도 배려하는 사람들. 쉽게 무엇인가를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과거 추억에 청승맞게 눈물 맺히는 사람. 왜 저게 저렇게까지 슬플까 가끔은 이해 가지 않아도 안아주고 싶은 연약한 마음들. 모두 다 지켜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또 나를 지켜 줄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