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후 5일째
이식 후 5일째 되던 날, 긴장되는 마음에 이른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앞으로 5일 뒤 병원에서 피검사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낮디 낮은 인내심으로 임테기를 한참 만지작거린다. 임신에 성공했을 경우 이르면 그때부터 희미한 두 줄을 볼 수 있다는 후기들을 보았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매일 반쯤 넋이 나가 있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혹시 실망감만 커질 수 있으니 때맞춰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고 했다. 그런 남편이 세상 깊이 쿨쿨 잠들어 있었고, 내 앞에는 판도라의 상자가 놓여있었다.
삐약삐약 짹짹 (소변 효과음)
임테기의 이 단순한 화학반응 앞에서 수많은 가임여성들의 희비가 명백하게 갈린다. 이토록 보편적이면서 인간의 운명과 깊게 결부된 테스트기가 또 있을까.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실들에 대해 분명 높은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변기에 앉아 테스트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역시 한 줄이다.
'그럼 그렇지,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을 리가 없지'
미련 없이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요즘 하던 아침 루틴대로 명상을 했다. 유튜브에서 '아침 명상'을 검색한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른 특별한 하루, 당신은 그 하루의 주인공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상이다. 내 하루의 시작은 우울하다. 임테기가 한 줄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잡념이 또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근 며칠간 응원이 되어주던 메시지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작 7분짜리 영상을 중간에 멈추고 다시 블로그를 검색한다. '임테기 며칠 뒤', '임테기 시약선', '임테기 희미한 두줄 뜨는 시기'. 읽었던 글을 또 읽고, 저 키워드들로 검색하기만 하루에도 수십 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디지털 기록은 지극히 단순하다.
'뭐야, 한 줄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두줄이었다고?'
희망이라는 건 그 짧은 순간, 단 몇 초만에 없다가도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당장 아까 버린 임테기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졌다. 매우 다급하고 떨리는 손으로.
찾았다.
두줄이다. 희미하지만 두줄이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보는 두 줄이었다. 지난 1년간 그토록 기다려왔던 두 줄, 과연 볼 수는 있는 것일까 했던 그 희미한 표시, 앞으로 무수한 다음 단계를 맞이해야 할 첫 도약.
그것은 '희망'이었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이 사실을 알렸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그는 늘 그렇듯 반응이 침착하다.
"그래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자"
한번 유산을 겪었던 터라 아직은 충분히 기뻐할 단계가 아니라는 걸 우리 둘 다 안다. 이제 고작 시작이라는 것도 안다. 김이 살짝 샜지만 그의 반응을 이해했다. 우리 앞에 있었던 대소사들 앞에서 널뛰던 감정을 침착하게 잡아주던 그였다. 옳고 필요한 반응이었다.
그래 맞는 말이지,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병원 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자
내가 대답했다.
쿨하게 반응한 그가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의 엉덩이가 씰룩거린다.
수면바지에 그려진 코끼리가 들썩들썩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