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에서 제왕절개까지
예정일이 하루 지났다. 유도분만을 하기로 한 날이다. 분만에 쓸 힘을 위해 아침부터 식사를 든든하게 했다. 전복죽을 먹었고, 앞으로 못 먹을지 모를 할리스 빙수도 시켜 먹었다. 중간에 틈틈이 낮잠도 잤다. 당분간 못 씻을 것을 생각해서 샤워는 오후 4시쯤, 깨끗하게 마쳤다.
사실 무섭고 떨리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날 세 번은 울었나 보다. 나 사실 무섭단 말이야 뿌엥~ 하면서 혼자 울다가, 남편이랑 이야기 나누면서 눈물이 고이다가 그랬다. 너무너무 아플 것이 무서웠고 언제 어떤 속도로 진행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두려웠다.
그렇게 출산가방을 챙겨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갔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지금 들어가면 ’ 둘이 되어 나오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산부인과 병동으로 들어서자 입원실, 분만실, 신생아실이 있었다. 휴일 당직을 서는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안내를 받아 다인실 창가 침대에 자리를 잡았는데, 환자가 나밖에 없다며 좋아했다. (그때까지 아주 태평했지). 심지어 남편은 좁디좁은 보호자 침대가 아늑하다고 했다.
짐을 내려놓고, 레지던트 선생님인지,, 여하튼 그곳에 상주하시는 젊은 의사 선생님이 내진을 해주셨다. 내진 어마어마하게 겁내고 있었던 터라 물론 아프긴 했지만 생각보단 견딜만했다. 자궁경부가 덜 내려올수록 깊이 찔러서 그런가, 으윽 소리 날 정도로 아팠다. 선생님이 마치 손목 끝까지 넣은 듯했다. 결과는 충격적 이게도 경부가 1센티도 안 열려 있었다.
산모님, 이러면 조금 강한 질정제를 써야 해요, 근데 아기한테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보고 뺄 수도 있어요.
라고 하시더라.
”질정제와 촉진제는 어떻게 달라요? “ 물었더니
”질정제는 직접 삽입하는 거라 수축이 더 세고, 촉진제는 수액 통해서 맞는 거라 서서히 올 거예요 “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자정에 질정제를 넣기로 하고, 자정이 될 때까지 그 사이에 병동으로 돌아가 피검사, 수액 꽂기, 제모 등을 받았다. 분만의 3대 굴욕 중 하나라는 제모는, 내 수치심의 기준이 높아서 그런가 할만했다. 대신 오히려 간호사분이 더 수치심을 느끼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다. 수많은 산모들의 아래 털을 관찰하고 깎아야 할 텐데, 정말 고된 직업이다, 참 죄송스럽다 생각했다. (긁적)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무통라인도 잡았는데, 순식간에 이루어졌지만 꽤나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침대에 누워 마취실로 실려가는데 병원 천장의 불빛들이 두려움을 더 자극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 굳이 침대에 실려서 가야 하나 라는 생각. 마취과로 실려 들어갔는데 여자 의사 선생님들이 계셨고, 척추 쪽에 국소마취를 하고 바늘을 꽂겠다 하셨다. 라인을 잘 잡기 위해 허리를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있었다. 마취약 때문인지 무통약을 조금 넣으신 건지 오른쪽 다리가 저릿거려서 “어 잠시만요! 다리가 저려요!!” 했더니, 부작용 중 하나라고 하시며 강도를 좀 낮춰주셨다. 그렇게 등에도 주삿바늘을 꽂고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다. 이제 팔과 등에 몇 개의 주삿바늘이 꽂힌 채로 분만을 위한 준비는 마친 듯했다.
남편과 자다 깨다가, 수다도 떨다가, 중간에 마지막 간식(맥스봉과 콜라)도 먹었다. 자정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두 번째 내진을 하셨다. 여전히 자궁문은 열리지 않았다며 (그럴 만도, 뭘 한 게 없는데 고 사이에 열렸을 리가) 예정대로 질정제를 넣으셨다. 배에 태동검사기를 연결하여 아기 심박수를 체크하면서.
시간이 점점 흐르고 새벽 1시가 되고, 2시가 되었다. 생리통처럼 배가 싸르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견딜만했고, 다만 등에 꽂힌 주삿바늘 때문에 자세가 목각처럼 고정되어 있으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숨을 계속해서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남편은 잘 자는 듯하다가도 눈을 번쩍 떠서는 검사기 수치를 수시로 확인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 이상해. 심박수가 멈췄어” 하는 거다. 화면을 봤더니 진짜 심박수 변동이 급격했는지 숫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살짝 편한 자세로 돌렸는데, 괜히 바꿨나 싶어서 다시 정자세로 누웠다. 근데 잠시 뒤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오셨다.
”산모님, 아기가 잠시 위험했었어요.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질정제를 지금 빼야 할 것 같아요. 한번 더 아기 심박수 떨어지면 그때는 제왕 해야 돼요 “ 하시더라.
그 말이 어찌나 무섭던지. 아기가 위험하다는 말과, 제왕으로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는 말 둘 다 그랬다.
‘하.. 그래도 나는 견딜만했는데. 두 시간 만에 질정제를 빼다니 ‘
아쉬웠다. 그러나 잠시 넣었다 뺐던 질정제의 효과가 조금은 있었는지 그 뒤로도 아침까지 약한 생리통 같은 통증은 있었다. 해가 뜨고, 간호사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의 내진이 또 있었다.
수축이 있었으니까 경부가 1cm는 열렸겠지 했던 기대도 잠시, 여전히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현실. 그러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교수님과 상의를 해보시겠단다.
아침해가 뜨고 교수님이 출근하셨는데 상의 끝에 제왕절개를 권유하셨다. 아기가 너무 힘들어해서, 촉진제를 넣어 자연분만을 한다고 해도 힘들어할 것이다,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 빨리 제왕절개를 결정하는 게 나을 거다,라는 얘길 들었다.
사실 뭐, 그렇게 얘기하시니 선택의 여지가 더는 없었다. 내 욕심 때문에 아기가 잘못되는 게 무서웠고, 내심 이 끝나지 않는 공포가 빨리 끝나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비교적 짧은 고민 끝에 20분 만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여러 명의 의료진들에 둘러싸여 파란 천을 경계로 내 아래는 발가벗겨지고, 누워서 대자로 뻗은 채 오른쪽 팔에 마취약이 들어갔다.
눈뜨세요 눈뜨세요!
나를 깨우는 목소리에 엄청난 통증과 덜덜 떨리는 한기를 느끼면서 눈을 떴다. 어딘지 모를 곳에 누워 배에서 미칠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 와중에 달달달 떨리는 이는 서로 부딪히면서 끝없이 소리를 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니 할아버지 한분, 막 다른 수술을 끝낸 남자 한분이 나와 같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회복실이었다.
‘맞다, 나 수술했구나.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긴 어디지?’
”너무 아파요! “ 하면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꺼이꺼이 하며 애원하자
”원래 그 정도로 아픈 거예요! “라고 하시더라. 진짜 끝나지 않는 고통이었다. 자연분만 했을 때 진진통이 이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30분쯤 지났을까. 사실 시간은 어떻게 흘렀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있던 입원실로 실려갔고, 그곳에서 남편 목소리를 들었다. ”수고했어 “였나?
그렇게 침대에 눕고, 다소 진정된 고통에 정신을 차려보니 몸에 수액이 꽂히고, 페인버스터와 무통주사도 연결되어 있었다. 살 것 같았다. 여전히 아프고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미칠듯한 극한의 고통은 지나갔다.
정신을 좀 차려보니 남편이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갓 태어난 아가는 양수에 얼굴이 띵띵 붓고 처음 만난 세상에 대한 놀람에 얼굴을 찡그리며 울고 있었다. 온몸을 구부리고 짧게 우는 아기가 짠한 동시에 너무 못생겨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물론 양수에 풀어서 그런 거였음)
진정이 되니까 휴대폰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몇 개의 톡방에서 내 상황을 궁금해해서 안부를 전했다.
“수술 무사히 끝났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남편과 엄마는 내가 수술실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자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뭔 일 생긴 건 아닌가. 그래서 아기가 나왔는데도 기뻐하지 못하고 계속 기도했다는데. 여하튼 뭐.
나는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