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과 화사, 닉과 주디, 그리고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박정민과 화사의 무대. 박정민이 ‘나 혼자 산다’에서 펭수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을 때부터 친밀감을 느껴온 나로서는, 지금 이렇게 주목받는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다만, 화사와의 케미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그 장면을 보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설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침착하고 회의적인, 그러나 속은 다정한 남자와 열정적이고 자유로움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줄 아는 여자의 조합은, 무딘 내가 봐도 찰떡이었다. <Good Goodbye> 뮤직비디오 속에서도 담백하고 시니컬한 박정민의 이미지와 뜨겁고 자유로운 화사의 이미지가 대조적으로 비치는데, 두말할 것 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최근에 본 <주토피아 2>에서도 이런 냉온탕을 오가는 커플이 등장한다. 바로 여우 닉과 토끼 주디다. 닉은 시니컬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다. 과거 괴롭힘으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감정 표현이 서툴고, 능글맞은 농담 뒤에 진심을 숨긴다. 그런 닉이 정의감 넘치고 열정적인 주디를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고 숨겨진 따뜻함을 드러낸다. 한편, 에너지가 넘치지만 때때로 무모한 주디를 닉이 침착하게 붙잡아주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서로 너무 다른 두 동물이기에,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주디의 사랑스러움과 닉의 츤데레 같은 면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닉과 주디 중 누구와 더 닮았을까?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닉 70%, 주디 30% 라고 말한다. 지피티 너 정말 예리하구나?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순둥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상처받기 싫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절대 변할리 없어.’라는 냉소를 품기도 했다. 그런 콘크리트 같은 내가 많이 변한 건 남편을 만나고부터다. 그는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라는 전제를 깔고 세상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이사 날짜를 조율하거나, 보증금을 두고 주인집과 껄끄러운 대화를 할 때도,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말하되, 상대방의 의견도 귀 기울여 듣고 진행했다. 나 같으면 혼자 씩씩거리면서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지도 못하고 화만 냈을 것 같은데, 신랑은 좀 달랐다. 항상 서로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며 어느 정도 합의를 이끌어내며 모든 대화가 끝났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벽과 얘기하는 듯한 나의 시니컬한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을 함께 지나오면서 ‘애를 쓰고, 정성을 기울이면 바뀔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내 안에 싹트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케미가 좋다는 건 결국, 서로 닮아서가 아니라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줄 때 생기는 현상 같다.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이 있다기보다, 어긋나 있는 결이 이상하게 딱 들어맞는 느낌. 닉과 주디가 그랬고, 박정민과 화사가 그랬듯이, 나도 남편을 만나면서 그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는 필요할 때 기꺼이 한 발을 내딛는 사람이었다. 그 차이가 불편해 마음이 상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면 싸웠던 이유 덕에 새롭게 균형이 잡혔다. 내가 주저앉을 때는 그가 끌어주고, 그가 과감해지는 순간에는 내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며 속도를 늦추곤 했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둘 중 하나만 있었으면 도달하지 못했을 지점까지 함께 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니다. 남편이 매일 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달리는 이유를 나는 끝내 다 알지 못한다. 또 내가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글을 쓰는 마음을 그가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대신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 채, 필요한 순간에는 조금씩 색을 섞어가며 맞춰간다. 완벽하게 닮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넓히기 위해서. 아마 우리가 말하는 ‘케미’란, 그런 현실적인 모양에 더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