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저녁 식사 후 식구들 모두 각자의 동굴로 흩어져 부산스럽게 잘 준비를 하는 시간. 누군가는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누군가는 미뤄뒀던 유튜브 영상을 재생한다. 그 틈에서 나는 조용히 노트 한 권을 꺼낸다. 오늘 날짜가 적힌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손이 닿는 대로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문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낙서들이 만년필 촉 아래에서 사각사각 쏟아진다. 이 소리는 그제야 비로소 깨어난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아는지?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책이다. 그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는 ‘모닝페이지’다. 이름에 걸맞게 해가 뜨기 전 책상에 앉아 쓰면 좋으련만, 요즘 나는 일찍 일어나는 데 영 소질이 없다. 밤늦게까지 핸드폰의 블루라이트에 노출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닝페이지는 애프터눈, 이브닝 페이지가 되고, 만년필은 시도 때도 없이 분주하다. 그렇게 틈만 나면 실제본의 미도리 노트를 활짝 펼쳐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이를테면, 11월 25일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아무래도 인식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흰색 크록스. 크록스 짭. ㅋㅋ 아무거나. 크록스 참을 사고 싶다. 귀여운 걸로. 달려 있는 거. 그게 내 것 같아서. 진실되게. 그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 일들. 폐허가 있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이 그대로 미색 종이에 옮겨진다. 내 안의 무의식에 접속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어떤 연필이나 펜보다 만년필로 쓸 때 몰입이 잘 된다.
참새방앗간처럼 자주 들르는 문구점에서 어느 날 만년필 코너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주 고가의 제품도 아니고, 노트 한두 권 살 정도의 돈만 있으면 당장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모양도 매끈하고, 일반 펜보다는 묵직해 ‘지금 나는 만년필로 쓴다.’는 실체적인 감각을 또렷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사장님은 만년필 초보자인 나에게 카트리지 잉크를 추천했다. 검은색 잉크는 뭔가 심심하게 느껴져 블루블랙을 골랐고, 그날부터 종이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써대기 시작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반려 만년필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만년필은 카트리지 잉크를 끼워 쓸 수도 있고, 병 잉크를 컨버터에 옮겨 담아 사용할 수도 있다. 카트리지 잉크는 끊김 없이 나오고 거의 일정한 색을 나타낸다. 병 잉크는 색이 아주 다양하고, 내가 원하는 색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대신 컨버터를 사용하면 들쭉날쭉하게 발색되기도 하고, 생각보다 잉크가 금방 닳아 글씨가 끊기기도 한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시험해보고 있다. 어찌 됐건 만년필 촉이 종이를 스치는 그 부드러운 감촉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손글씨를 적어나가는 그 짧고 조용한 시간 동안, 공회전되던 머리가 비로소 쉴 수 있다.
매일 만년필로 써나가는 일이 번뜩이는 해결책을 주거나, 막혀 있던 일을 갑자기 술술 풀리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잡했던 마음을 천천히 정리하고, 지금 닥친 일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도 만년필을 통해 종이 위로 스르륵 빠져나가듯 내려놓을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에게 장애물을 뛰어넘는 용기를 주듯, 나에게 만년필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마법의 지팡이다. 진료실에서의 긴장,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흩어진 마음이 노트 한 장 위에 다시 모인다. 말로는 잘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도, 손끝을 따라 흐르는 잉크 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순해진다.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기만 하던 감정들이, 글씨로 옮겨지는 순간 비로소 자리를 찾는다.
손으로 적는다는 건 어쩌면 너무 오래된 방식이라 구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동작’ 덕분에 오히려 마음의 씨앗을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키보드로는 흘러가듯 쳐버릴 문장도, 손으로 쓰면 한 글자 한 글자가 나의 리듬과 숨결을 닮는다. 아날로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해지는 게 아니라, 느리게 적는 동안 내가 조금씩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데리고 오는 도구에 가깝다. 오늘을 기록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시 내일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자전거를 천천히 앞으로 밀어주는 작은 톱니바퀴 같은 것.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가도, 만년필을 잡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잠시 걸음을 늦춘다. 그 느려진 시간 동안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나다운 속도로 살아갈 여유를 되찾는다.
사각사각. 익숙한 소리와 함께,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닌 만년필 쓰는 중년의 하루가 오늘도 그렇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