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커피 마시는 사람

by 지안

두 잔. 오늘 아침에만 벌써 커피를 두 잔 마셨다. 기상하자마자 마셨던 커피우유까지 합치면 세 잔인가.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해서 고등학교 까지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미신처럼 엄마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던 탓이었다. 대학 입학 했을 때부터는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달콤한 커피 음료부터 시작해서 쓴맛 가득한 아메리카노까지 종류를 바꿔가며 지금까지 마셔왔다. 자주 마시다 보니 좋아지게 되었고, 매일 마시다 보니 사랑하게 되었다. 아니 중독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에너지 음료를 들이켜던 사회 초년생 시절보다는 낫다 싶어 하루 커피 세 잔을 합리화한다. 마셨던 커피 잔 수를 세면서 “하루 세 잔은 무죄!” 매일 들쑥날쑥한 법에 따라 판결은 늘 내가 내린다. 거물거리던 눈꺼풀도 커피가 들어가면 잠시 동안 말똥말똥해진다. 이게 카페인의 효과인가. 역시 마시길 잘했다.


커피는 참 신기한 음료다. “차 한잔 더 하고 갈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나, 연인과 함께 있고 싶을 때,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신입 시절, 밤새 업무를 해낼 때 옆을 지켜주는 든든한 전우 같기도 하다. 또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만끽할 때 느끼는 여유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존재였다. 언제 어디에서나 커피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다른 차들보다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내가 속상할 때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들끓는 속을 달래고, 눈물이 나게 힘들 때 달달하고 따뜻한 바닐라 라떼 한 모금에 시름이 가신다. 슬플 때나 기쁠 때 커피가 함께 있어줬다.


출처 : pixabay


특히,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주는 데에 커피만 한 게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순간, 그 쌉쌀한 맛에 의지해 일을 하나씩 해낸다. 배고프다 외치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출근을 위해 허겁지겁 내 옷에, 아이들 옷에 팔을 끼워 넣는 일 모두 커피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각성 효과 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날에는 나무 늘보라도 된 듯 모든 움직임이 느려진다. 머릿속은 ‘빨리빨리’를 외치며(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과부하가 걸리는데, 몸은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응원단이 필요할 때, 커피 한 모금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응원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커피는 내게 거의 구세주에 가깝다.


애석하게도 이런 나의 구세주도 소용없는 날이 있다. 두 잔을 마셔도, 세 잔을 마셔도 눈꺼풀이 여전히 무겁다. 그런 날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필요한 건 카페인이 아니라, 그냥 쉬어도 되는 하루가 아닐까 하고. 재깍재깍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휴식 같은 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커피를 마신다. 잠을 완전히 깨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처럼, ‘이제 해보자’는 나만의 버튼을 누른다. 어떤 날은 혼자서 여유 있게, 어떤 날은 시간에 쫓겨 조급하게 들이켠다. 그래도 괜찮다. 완전히 깨어 있지 않아도 하루는 시작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나를 긍정하는 순간, ‘오늘’을 이미 조금은 살아낸 셈이다. 그렇게 하루의 비상구를 열어둔다. 커피라는 손잡이로 여는, 마음 한 편의 쪽문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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