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띠리리링 딩딩 땅~ 6시 30분 아침 알람이 울린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라도 일으키려고 하지만, 이내 따뜻한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첫 번째 알람은 실패다. 저 멀리 식탁에서 두 번째 알람 소리가 들린다. 30분 정도 단꿈을 꾸었으니, 이제는 일어나야지. 시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태블릿의 알람을 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요원하고, 밥상 차리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배고프다 연신 외쳐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겨우 코코볼 한 봉지를 꺼내어 그릇에 담는다. 누구는 10첩 반상을 해 먹인다던데... 모르겠다. 내가 살고 보자.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하다. 일 한다고, 글 쓴다고, 피곤하다고 매번 아이들의 요구를 뒤로하기 일쑤니까. 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놀다 보면 항상 엄마인 내가 먼저 "이제 그만하자."를 외치게 된다. 아이들이 끝을 내는 놀이는 도대체 언제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매달리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는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다. 땅바닥과 한 몸이 되어 누워있을 수밖에.
밖에서 엄청 많은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에서 살뜰하게 애들을 챙겨 먹이고 돌보는 것도 아니고. 요즘 나는 망나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그런 죄책감이 드는지. 완벽함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일까. 단전에서부터 쥐어짜 내서 무거운 돌덩이를 밀어 옮기듯 애는 엄청 쓰이는데, 결과는 겨우 1mm 움직였을까 모르겠다. 시지프스의 돌처럼 다시 미끄러져 내려와 더 아래에서 시작해야 될 때도 많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엄마'라는 모습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자책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 늘 따뜻한 밥을 차리고, 지치지 않고 아이들의 부름에 즉시 반응해 주는 사람. '항상'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아우르는 사람.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 이렇게 쓰고 보니 엄마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보살님이 되길 원하고 있었다. 조금 화도 내고, 아침은 늘 시리얼이지만, 나를 최고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하루에 한 번은 꼬옥 안아주는 사람. 아픈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면 되지 않을까. 한껏 높아졌던 눈이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다시 내려온다.
"학원 안 가면 안 돼?"
"태블릿 더 보고 싶은데..."
"배고파. 초콜릿 먹을래."
언제 미안해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뒷목을 타고 열이 오른다. 참을 忍자를 반복해서 마음속에 새기다 보니, 이마에 세로 주름이 하나 더 늘 것 같다. 보살님이 되기는 글러먹었다. 다시 반복되는 하루.
해가 어둑해질 즈음, 단골인 반찬가게에 나의 영원한 친구, 배달의 민족을 호출해 저녁거리를 준비한다.
배고픈 아이들의 저녁은 엄마손 아닌 사장님 손 맛있는 반찬이다. 인스턴트를 주지 않았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오늘은 이렇게라도 나의 죄책감을 덜어본다. 자기 전 양치하라는 잔소리가 끝나면, 다시 유니콘이 되어 아이들을 포옥 안아주고 싶다. 오늘 하루 수고 했다고, 나의 사랑스러운 악당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