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울질하는 사람

by 지안

매일 아침. 서학 개미의 하루는 주식 창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예약해 둔 매수와 매도가 잘 이루어졌는지, 밤사이 미국 주식 시장의 파도는 얼마나 요동쳤는지.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눈을 비비며 화면을 들여다본다. 대개 결과는 간단하다. 붉은색이거나, 푸른색이거나. 한 화면에 그날의 희비가 압축되어 있다. 한일 월드컵 시절부터 붉은 피를 먹고 자란 나로서는 주가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 숫자가 마음에 쏙 들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화면이 시퍼렇다. 마치 멍이 든 것처럼 주가도 파랗고, 내 마음도 아리다.


밀레니엄이 막 지난 2000년대 초, 왁스 언니는 이렇게 노래했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맘이 예뻐야 남자지.” 아직까지 유교사상이 깊게 남아 있던 시절, 돈보다 인성을 말하던 시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신념처럼 한국을 뒤덮은 2026년에 이 노랫말을 다시 떠올리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남자든 여자든,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많으면 좋고, 맘까지 예쁘면 더 좋다. 돈이 많으면 착해 보이고, 예뻐 보이고, 선해 보인다. 다 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정말 다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나는 매일 저울 위에 ‘나’라는 사람을 붙박이처럼 한쪽에 올려놓은 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무거운 지 가벼운 지 비교한다. 주식 거래 앱에서 수익 인증을 한 계좌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애 셋을 낳고도 날씬한 지인들을 만나고 나면 고작(?) 둘 밖에 낳지 않은 내 비대한 몸뚱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이른바 ‘갓생’을 사는 친구들의 일상을 엿볼 때면, 나의 바닥인 체력을 저주할 수밖에 없다. 돈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비교 대상이자 질투와 선망, 때로는 저주의 대상이다.


양팔저울.jpg 출처 : pixabay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렇게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건. 마음속 저울을 쳐다보지 않으려 매번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람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 그런지,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기울어진 추의 무게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자동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나는 그 습관을 통째로 고치려는 것 대신 방향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남의 것만 줄줄이 올려놓고 내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가진 좋은 점들을 그러모아서 의식적으로 같은 저울에 올려놓아 보는 식으로 말이다.


주식 계좌를 볼 때면, 눈곱만 한 수익률 대신 아직까지 꾸준히 투자하고 있고 시장에서 버티고 있는 나의 힘을 떠올린다. 홈쇼핑표 플러스 사이즈 고무줄 바지를 입으며 괜히 속상할 때는, 여기까지 데려온 ‘내 몸’을 생각한다. 두 아이를 품고 먹이고, 키우느라 고생한 내 몸에 측은지심이 생긴다. ‘열심히 살았구나.’ 나를 보살펴 줄 수 있는 여유로움도 그에 맞춰 늘어난다.


하루를 바삐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나면, 흐린 눈으로 지나갔던 나의 하루를 기어코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본다. 새벽 기상은 못했지만, 아이들을 제시간에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냈고, 밀린 집안일은 있어도 저녁은 차려주었다. 1부터 9까지 쌓여 있는 일을 모두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오늘 꼭 해야 할 한 가지는 끝냈다. 저울 위에 올려보면 늘 가볍다고 느꼈던 하루가, 생각보다 허무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하나씩 올려놓다 보면, 저울이 아주 조금씩 덜 기운다. 여전히 남의 것들이 더 무거워 보이는 날이 많지만, 적어도 완전히 붕 뜨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존재 전체를 깎아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비교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와 몸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재지 않고서는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일 테니까.


다만 그 저울 위에, 남의 것만이 아닌 내가 가진 것들도 함께 올려놓는 연습을 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인 순간들이 '나만의 추'가 되어, 기우뚱거리는 인생이라는 저울의 중심을 조금씩 잡아주기를 바란다.


그래도 파란색보다 빨간색으로 뒤덮인 계좌로 중심이 기우는 일만큼은 언제든 환영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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