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내일까지인데 어떡하지? 데드라인이 코앞으로 다가와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발등튀김’이 되어버린 상태로 허겁지겁 자판을 두드린다. ‘하고잡이’인 나는 왜 이토록 쉼 없이 일을 벌이는 걸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조차 사실 내가 벌여놓은 ‘수많은’ 일의 목록 중 하나일 뿐이다.
새로운 것에 발을 담그는 걸 좋아하는 성정은 어릴 때부터였다. 미지의 영역을 시도할 때 느껴지는 설렘과 흥분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만약 심리 검사를 해본다면 ‘자극 추구’ 성향이 그래프 밖으로 튀어나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소문난 ‘쫄보’다. '위험 회피' 경향 또한 최대치를 찍고 있으니, 내 안에는 극과 극의 모순이 늘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 시절, 나는 당시 유행하던 공모전에서 수상해 ‘공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로망이었다. 테마가 있는 여행을 기획해 당선만 되면, 그 기획안 그대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가뜩이나 돈 없는 학생 신분으로 남의 돈을 빌려 적법하게 떠나는 여행이라니,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이미 수상을 한 것처럼 설레발을 치며 지난 수상작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당시 함께 수업을 듣던 같은 과 언니와 친한 동아리 후배를 꼬드겨 팀을 꾸렸다. 응당 제안한 사람이 팀장으로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했건만, 의욕만 앞섰을 뿐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항해사 없는 배처럼 기획서는 산으로 갔고, 어영부영 시간만 흐르다 결국 서류 한 장 내보지 못한 채 팀은 와해되고 말았다.
이런 성향은 운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배우고 싶은 운동이 생기면 일단 등록부터 하고 보지만, 대개 ‘마의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수영이 배우고 싶어 방학 특강을 끊으면 첫 한 달은 세상 모범생처럼 꼬박꼬박 물을 먹어가면서도 수영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시작할 때의 그 뜨거웠던 불꽃은 야속하게도 금세 사그라든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아드레날린이 바닥을 드러내면, 내 안의 ‘쫄보’와 ‘게으름’이 합작해 기가 막힌 핑계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다. “아, 어제 제모를 깜빡했네. 도저히 민망해서 안 되겠다.”, “어젯밤에 잠을 푹 못 자서 너무 피곤한데, 이 상태로 물에 들어갔다간 큰일 날지도 몰라.” 같은, 거절할 수 없는 명분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진다.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 되어 하루 이틀 빠지다 보면,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수영장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것저것 집적대 본 취미 생활은 수두룩하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운동이나 특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해진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발등튀김’의 고통을 견뎌내며 이 글을 수습하고 있다. 어제의 내가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사고를 오늘의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수습하는 이 굴레. 아마도 내일의 나는 오늘 이 치열했던 고통을 까맣게 잊은 채, 또 다른 흥미로운 공고문을 클릭하며 “오, 이거 재밌겠는데?”라고 중얼거릴 게 뻔하다.
자극을 쫓는 심장과 위험을 피하려는 머리 사이에서 평생을 갈팡질팡하며 살겠지만, 이제는 안다. 이 모순적인 충돌이야말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연료라는 것을. 완벽한 계획표보다는 마감 직전의 아드레날린이 나에게는 더 믿음직한 페이스메이커다.
자판 위를 춤추는 손가락 끝에서 고소한 튀김 냄새가 나는 것도 같지만, 뭐 어떤가. 이번 원고도 어떻게든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 글을 전송하고 나면 잠시 숨을 고를 것이다. 그러고는 아마 곧바로, 내 발등을 맛있게 튀겨줄 ‘새로운 불꽃’을 찾아 인스타그램 피드를 유랑하기 시작하겠지.
인생은 원래 저지르고, 수습하고, 또다시 저지르는 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