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지닌 고민의 무게
고민이란 놈은 참 고약하다.
녀석은 늘 우리의 삶을 따라다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그때부터 머리는 쑤시고 가슴은 답답해진다. 어떤 계기로 녀석이 떨어지기 전까지 우린 꽤 오래 이 증상으로 고생한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 중 고민이 없는 생명체는 없다. 말이 통하진 않지만 행동을 통해 동물들도 고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뜩 다가와 다양한 이유로 삶을 피곤하게 하는 이 고민. 그런데 우린 가끔 녀석을 자신만의 저울에 올려놓고 판단할 때가 있다.
'배부른 고민하고 있네.'
누군가가 고민 같지도 않은 문제로 고민하거나, 여유 있어 보이는 상대가 고민을 말할 때 무심코 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는 연예인들이 고민을 늘어놓을 때 그 밑에 달리는 댓글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부른 고민'이란 것이 존재할까?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린 저마다 다른 환경, 다른 입장에 있다. 그렇기에 고민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백수는 취직을 못해 고민이고 직장인은 직장을 그만두지 못해 고민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저쪽이 더 고민이네'할 수 일을 지 모르지만 결국 그 고민을 겪고 있는 본인에게 고통스럽기는 둘 다 매 한 가지다. 거기다 고민을 견딜 수 있는 무게도 개인마다 다르니 누가 보기에는 '배부른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죽고 싶은 고민'일 수도 있다.
고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위험한 이유는 자칫 그 판단이 괴로워할 누군가의 마음을 긁어버릴 수 있단 것에 있다. 그 누군가가 내 소중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끔 고민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이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생각한다. 그들이 과연 누구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할 수 있었을까?
친구들도, 가족들도 "야, 우리 봐라. 너 정도면 배부른 고민이지."라고 말해버렸다면? 그는 얼마나 깜깜했을까?
아예 떨어진 타인이라면 모르지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누군가가 고민을 이야기할 때 절대 그 고민을 쉽게 무시해선 안된다.
누군가는 그 '배부른 고민'으로 너무 힘들어 벼랑 끝에 매달린 채 SOS를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말 한마디가 내 곁에 소중한 그를 건져 올릴 수도 있다.
우린 참 고민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각자 숨쉬기도 빡빡하고 각박한 세상이라 남의 고민이 하찮게 여겨질 때가 많다. 일단 내가 힘드니까.
그래도 타인의 고민에 조금만 귀를 기울인다면 언젠가 상대도 당신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각박한 세상,
소중한 사람 끼리라도 귀를 기울이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