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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Feb 13. 2019

마음 치료소.

치료소 입소.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온몸이 경직되며 마비가 왔고 손과 발이 뒤틀렸다. 


그 길로 아버지의 차에 실려 응급실로 간 날,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날 보며 의사가 무심히 던진 말을 난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거 몸에 문제 있는 거 아니니까 신경정신과 가보세요."


그 말은 들은 어머니와 나는 한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응급실에서 받은 치료는 링거를 맞은 것뿐이었다. 링거를 다 맞고 멍한 표정으로 응급실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설마... 내가 무슨 신경정신과야?' 


처음에는 그렇게 넘겼다. 부모님도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신경정신과의 이미지가 좀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당시, 그러니까 10년 전 신경정신과는 나에게 너무 생소한 이름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수상한 증상은 있었다.


'저 사람이 날 미워하는 건 아닐까?' '괜히 나서면 분명 욕만 먹을 거야.' 이런 의미 없는 불안들이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뭔가 작은 충돌, 작은 의심만 생겨도 그게 눈덩이처럼 커져 날 덮쳤고 괴롭혔다. 계속 어딘가가 아팠고 그럴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그런가 보다 했다. 꽤 힘들었지만 '전부 내가 약해서 그런가 보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며 참았다. 


그때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정석처럼 받아들여질 때라 젊은 놈이 이런 걸로 아프다고 하면 그저 나약하거나 어딘가 부실한 사람으로 찍히기 일수였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생긴 상처는 점점 커졌고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날 갉아먹고 있었다. 결국 난 괴물에게 마음을 뜯어 먹힌 채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호흡 곤란으로 괴로워하는 나의 얼굴에 의사는 검은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리고 내 얼굴을 씌운 봉지를 잡고 있던 아버지에게 이전 의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신경 정신과 진단받아보셨어요?"


이제 더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결국 난 태어나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라는 곳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유 모를 두려움이 앞섰다. 같은 병원인데도'가정의학과'나 '이비인후과'를 갈 때와는 마음이 천지차이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접수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풍경이 내가 지금껏 다니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 놀랐다.


물론 어딘가 넋을 놓은 사람,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 보호자의 손을 잡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진료를 기다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점은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만해도 난 신경정신과를 과연 누가 갈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감기 걸리면 찾아가던 가정의학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혔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접수를 하고 나의 상담 차례가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께선 나에게 무엇이 불안한지, 어떨 때 증상이 발현되는지 같은 다양한 질문들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은 한 없이 친절하고 자상했다. 하지만 한창 타인에게 불편함을 느끼던 난  흰 공간과 좁은 방, 타인과의 가까운 거리로 꽤 겁을 집어먹고 긴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후 입원이 결정됐다. 부모님은 입원 수속을 위해 가셨고 난 간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입원실로 향했다. 당시 내가 간 신경정신과는 개방병동과 폐쇄병동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난 개방병동에 침상을 부여받았다. 그곳에는 4개의 침상이 있었는데 내가 왔을 때는 치매 할아버지 한 분이 주무시고 계셨다.


"이걸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나에게 환자복을 건넸다. 그때까지 난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었다. TV에서나 보던 환자복을 입으니 오만가지 감정이 날 사로잡았다. 그때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간병인분께서 입원실로 들어오셨다.


"젊은 친구가 왔네.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간병인 분께서 나를 향해 인사말을 건네셨고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내가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이 막막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만난 이들은 밖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이들처럼 대부분은 우리와 다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마음에 감기가 걸렸을 뿐, 그리고 그 감기가 심해져 더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것뿐이었다. 개방병동도, 폐쇄병동도 그저 사람들이 모여사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었다. 오히려 서로 간의 마음에 상처를 알기에 위해주고 조심하려 애썼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작던 크던 마음에 아픈 병을 가지고 산다. 


그 병이 어떤 사람은 감기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독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가는 일은 다른 병원을 가는 것처럼 쉽지 않다. 연예인들이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미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는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다.


'나 우울증이야.' '나 불안장애야' '나 공황장애야'라고 하면 친구, 가족이 아닌 이상 편견을 가진다. 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라고 판단해버린다. 그래서 혼자 참고 참다 괴로워하고 결국 더 큰 병이 되어버린다. 어떤 경우에는 영영 행복을 잃어버리도 한다.


난 그곳에서 지내며 처음보다 한결 나아진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봤다. 물론 나도 그랬고, 그리고 그 사람들로부터 위로도 받았고 배운 것도 있었다.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은 병을 키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음의 병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딘가가 아픈 건 죄가 아니다. 아픈 걸 참는 건 해답이 아니다.


소소한 상담과 작은 용기가 벼랑 끝에서 한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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