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맨발 달리기 클래스
바가모요 마을 어귀 양철집에는 단순히 나이 때문에 장로 취급을 받는 늙은 남자가 살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생을 보낸 집에서 권태로운 아침을 시작하려 한다. 앙상한 몸을 가졌지만 뼈에 매달려있는 근육이 그의 젊은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한쪽 다리가 짧은 의자에 앉아 비가 그친 동네를 응시한다. 자신의 요람이자 무덤을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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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젖은 마을을 보며 갑작스레 오른 생선 시세를 생각하기도 하고 대뜸 애먼 닭들에게 화풀이도 해보지만 여전히 똑같은 일상이다. 저주같이 평화롭다. 그에게 하루란 태양의 움직임이 아니라 얼마나 담배를 태웠는지가 기준이 된다. 9개비 즈음 폈을 때 그의 하루는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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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개비째, 하루의 1/3 지점. 시선은 하릴없이 수평선 언저리에 머문다. 그러다가 곧 그는 기묘한 것을 마주하게 된다.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지만 분명하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세 명의 *무중구Muzungu.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는 무중구는 심심치 않게 보았어도 맨발로 아프리카를 뛰는 이들은 처음이다. 그의 눈이 점점 커진다.
*스와힐리로 백인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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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입에 죽치고 앉아 지나가는 여자들의 엉덩이 순위를 매기는 게 일과인 오토바이 운전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는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시선처리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내 각자의 방식대로 맨발의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몇몇은 웃고 몇몇은 비웃는다. 또 몇은 냉소 섞인 언어를 뱉는다. 각양각색의 반응이지만 공통되는 한 가지 사실, 모두의 눈이 뛰고 있는 세 명의 맨발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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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세 명의 외국인이 맨발로 마을에 침범한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속수무책이다. 주변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맨발의 여행자들은 꾸준히, 성실하게 서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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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바가모요를 뛰며 알게 된 사실은 맨발보다는 무릎이 문제라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맨발에 상처가 나겠다는 생각에 붕대와 밴드, 박테리아 약만 구비했는데 어제 빠른 속도로 뛰어보니 발보다 오히려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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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밑을 구성하는 에어air는 단언컨대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쿠션과 에어는 도시에서처럼 패션의 부차적 요소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었다. 발밑에 완충제가 없다는 것은 온전히 발목과 무릎의 탄력만 사용한다는 것, 그곳에 모든 충격이 몰리는 것을 뜻했다. 맨발로 달리니 평소에 필요를 못 느끼던 것들이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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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가까운 길에는 폭신한 흙이 많아 달리기엔 용이했으나 도로 사정이 들쭉날쭉했다. 곳곳에 자갈이 가득했고 사이사이 유리가 보였다. 몸도 몸이지만 발아래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 집중을 요해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3km 정도를 뛰어 바가모요를 벗어나자 눈에 띄게 도로가 말끔해졌다. 마을 근처에는 쓰레기가 많았던 반면 본격적인 도로 위는 비교적 청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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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뛰는 도로는 크게 세 가지로 종류를 나눌 수 있었다. 길을 구성하는 실질적 아스팔트, 하얀 끝 선 옆의 콘크리트 도로, 그리고 그 밖의 자갈길. 각각의 특성이 뚜렷했기에 요리조리 선택을 하며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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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뛰기에는 아스팔트가 가장 적합했다. 구름이 끼어 해가 나지 않아 도로가 차가웠고 쓰레기도 없었으며 도로의 질 또한 조밀하여 부드럽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차량이 기습적으로 빠르게 지나갔기에 꾸준히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주로 옆의 상아색의 콘크리트 도로로 달리다가 아스팔트를 잠깐 점거하는 방식으로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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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가장 뛰기 좋은 곳은 도로의 한가운데, 차가 주로 지나다니는 바퀴 폭이었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 트럭들이 수억 번 바퀴로 짓이겨놓아 아스팔트에 바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는데 그 움푹 파인 지점이 다른 어느 부분보다 더욱 균질했고 매끈하여 뛰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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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 아무 예상이라곤 없었지만, 혹여 내가 이 여행에 대해 무엇을 예상했었더라도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차들은 반대편으로 피해주었고 운전하는 기사들은 지나가며 우리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람들이 계속 하이파이브를 청했으며 그들은 사라지는 우리의 뒤로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주변의 모든 것에서 호의를 느꼈다. 이전의 여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친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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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km. 달릴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고요하다. 그저 땅과 나, 그리고 지나가는 차만이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타닥-타닥-타닥 장작불에서 불꽃이 튀는 것과 비슷한 발소리가 난다. 일정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고 살았던 리듬을 느끼며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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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발로 느끼며 지금까지 경험했던 여행들을 떠올렸다. 5개월간의 아프리카 여행뿐만 아니라 유럽, 중근동, 동남아시아까지 7년에 걸쳐 유랑한 여행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 눈앞에 한껏 벌어져있는 청초록의 색채와 이 감각을 무려 25년이나 모르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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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저만치에서 앞서 뛰었다. 닉은 페이스메이킹을 해주며 옆에서 나를 따라 달렸다. 그는 나에게 너무 거칠게 뛴다, 발 앞부분으로 뛰어라 같은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는 마사웨가 보인다. 10km 지점이다. 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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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아프리카의 한가운데, 세 명의 헉헉 대는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시야에는 수평선을 방해하는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일면식도 없는 인간들이, 서로 다른 대륙에 살던 인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프리카를 맨발로 뛰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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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마음속 해사한 기분이 치밀어 오른다. 새로운 동행과의 새로운 여행, 시작이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