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여행지로 정한다면 몇 가지 특수한 고민이 추가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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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야 말라리아가 고어 취급을 받지만 같은 시간, 지구의 다른 지역에선 여전히 활개를 치는 질병이다. 모기에 대한 매너리즘을 완전히 깨버리는 병, 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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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가 무서운 이유는 매개에 있다. 바로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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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에 맞지 않게 대범한 이놈에게 피를 한 번도 뜯기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이토록 흔한 혈액 수탈이 세계 몇 군데에서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로 다가온다. 익살을 조금 더해보자면 어떤 지역에서는 팔을 벅벅 긁다가 꼴깍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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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발생 원인은 아직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어쩌면 이 병은 대제국을 건설하겠다고 건방을 떨었던 *알렉산드로 대왕의 오만함을 잠재우기 위해서 신이 만들어낸 질병일 수도, 혹은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대사처럼 신이 아프리카를 버리고 떠나서 생긴 병일지도 모른다. 허나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아프리카에서 모기 한 마리는 ‘모기 한 마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알렉산드로 대왕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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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병은 살짝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그 이유 역시 매개에 있다. '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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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말라리아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말라리아는 그저 우리 한국 사람이 김치 속 유산균에게 느끼는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다. 콧물감기 하나라도 걸리면 지랄발광하는 여행객들의 입장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입장이 완전히 정반대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감수성의 차이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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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여행 초반, 스와질란드에서 모기에 심하게 뜯겨 병원에 간 나의 대화를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데
Q - “모기에 물렸는데 검사 가능한가요?”
A - “아니 모기에 물렸는데 왜 검사를 하러 오셨죠?”
Q - “네? 모기에 물렸으니까요.?”
A - “...”
Q - “모기에 물렸는데 말라리아 아닌가요?”
A - ”모기에 물렸다는 게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건 아니에요."
Q - “그래도 모기에 물렸으니 검사를 해주시면 안 돼요?”
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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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나만의 특수한 경우가 절대 아니다. 결국 그들은 한국에서 온 멍청이가 팔다리를 팔딱거리는 최후의 행동거지를 보이고서야 ‘뭐 이런 등신이 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검사를 해준다. 허나 여전히 천하태평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해보자면 나는 아프리카 여행 초반, 말라리아에 대비하기 위해 대형 모기장을 사서 우스꽝스럽게 가방 옆에 메고 다니다가 밤에 이불처럼 덮고잤는가 하면 바르는 모기약, 뿌리는 모기약, 모기향까지 사용했으며 모깃소리가 들릴 때면 자다가도 허겁지겁 불을 켜고 희번덕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모기는 미물인 주제에 독심술이 가능하여 자기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사람의 눈에는 절대 띄지 않는 얄미운 놈 아니던가. 귀 가까이 모기 소리가 들려 빠르게 손을 움직였지만 애꿎은 뺨만 때린 경우가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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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라리아는 감염 초반에 약만 잘 먹는다면 감기같이 가볍게 앓고 끝나는 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아니 알아도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여행 초창기에는 타오르는 저항감을 지닌 채 모기에게 투쟁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말라리아는 나의 수면욕까지 이기지는 못했다. 여행 초반에는 강박적으로 2주에 한 번 *랩에 가서 피를 뽑고 감염 여부를 통보받았지만 잠을 설치는 것도 한두 개월이지, 나중에는 감염되면 치료하자라는 생각으로 말라리아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휴대용 키트를 구매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잠에 들었다.
*랩은 피를 뽑거나 간단한 검사를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을 말한다. 아프리카 전역에 흔하게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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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후에 먹는 약도 잠비아에서 저렴하게 구매했다. 그러나 신줏단지처럼 한두 개월 모시다가 어느 숙소에 놓고 왔는지 말라위 국경을 넘은 이후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던 몇 개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아프리카 사람들의 감수성으로 동기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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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나 매너리즘을 깨트리는 병, 새로운 동행들과의 여행에 집중하느라 방심한 사이 말라리아는 나를 비웃듯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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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러닝을 마치고, 우기라서 캠핑이 여의치가 않아 우리는 전날 묵었던 숙소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 평이한 밤을 보낸 다음 날, 잠에서 깬 나는 몸이 어제와 다른 것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닉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곧이어 닉은 설사를 하더니 머리가 아프다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연달아 나도 설사를 했다. 아프리카에서 몸이 아프면 증상이 어떻든 간에 굉장히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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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호스텔의 주인에게 근처 병원을 안내받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 걸어가는 발자국만큼 머리가 아파왔다. 겨우겨우 도착한 병원은 기대와 달리 굉장히 열악했다. 환자들로 북새통이었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어 접수하는데 꽤나 헤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접수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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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닉과 나의 상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마치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것만 같았다. 닉의 낯빛은 이미 회색으로 변해있었고 유리에 비친 내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닉은 칼에게 이 증상은 말라리아가 분명하다고, 약을 사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옆에서 머리를 감싸고선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모두 부산을 떨었지만 그 누구도 유난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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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약국에 도착하자마자 칼은 가장 비싼 말라리아 약을 세 개나 구매했다. 그 자리에서 닉은 약을 찢어 허겁지겁 삼켰지만 나는 말라리아 약을 가급적이면 복용하고 싶지 않았다. 약 자체가 신장과 간에 굉장히 치명적이며 부작용으로 헛구역질과 오한, 현기증을 일으키기에 가히 새로운 질병을 복용하는 수준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약을 먹지 않고 테스트기를 사서 다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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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라리아 테스트를 한 후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 확인이 된다면 약을 먹겠다고 칼에게 말했다. 약국의 주인은 병을 검사할 수 있는 랩이 가까이 있으니 찾아가 보라고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
랩은 가까웠으나 병원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칼과 닉은 늘어선 줄을 보고선 숙소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홀로 남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처음 느껴보는 입체적인 통증이 머릿속을 마구 휘저었지만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 외엔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30분 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랩으로 들어가니 의사라기 보단 푸짐한 스타일의 동네 아줌마가 금테 안경을 끼고 나를 맞이했다. 플라스틱 키트로 간단하게 검사하는 줄 알았는데 현미경의 관찰판에 피를 묻히고 꽤나 체계적인 검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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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정확히 20분을 기다린 후,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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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양성이었다. 말라리아 양성. 피 속에 말라리아 세균이 존재했다. 나는 말라리아에 감염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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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핑 돌았다. 결과를 예상하는 것과 예상한 결과를 받아보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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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놀랍게도 의사 아줌마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화가 나려던 것도 잠시, 공포도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일상적인 어투로 검사지를 설명해나가며 나에게 빨리 검사를 받으러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약은 두 알에 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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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판정을 받고 난 후, 눈앞에 담담하게 존재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기이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이내 빠르게 이분되었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 걸리지 않은 사람. 나 그리고 나머지. 달라달라를 잡아 타고 겨우 방으로 돌아오니 여행이고 뭐고 닉은 이미 약을 먹고 뻗어있었다. 칼에게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다고 말하니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약국에서 산 말라리아 약을 건네주었다. 죽기는 싫었기에 나는 약을 날름 삼키고선 닉의 옆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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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뿌둥한 정신에 두통이 실력 좋은 미식축구 선수처럼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왔다. 고통을 잊기 위해 도망치듯 잠에 들었다. 약의 효과 때문인지 하루에 17시간을 넘게 자니 날짜는 물론, 오전과 오후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날 내내, 다음 날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저 누워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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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활동이라곤 숨 쉬는 것과 눈을 깜빡이는 것뿐. 허나 이 둘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전신엔 피로감과 몸살 기운이 가득했다. 보통의 몸살감기 증세와 비슷하긴 했지만 정도가 매우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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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의 두통은 실로 특이했는데 왼쪽 귀부터 코까지, 총 90도를 영역 1이라고 규정하고 나머지 90도씩을 시계방향으로 영역 2, 3, 4라고 명한다면 두통은 지독하게도 영역 2와 4를 방문하여 노크를 해댔다. 1과 3 영역은 멀쩡했다. 또한 두통은 ‘실례합니다’의 수준이 아니라 벨을 누르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발로 냅다 쿵쿵 차고 빠르게 달아났다. 그리고 잠잠해질 때쯤 또다시 찾아왔다.
죽는 것은 무섭다. 나는 죽음에 대해 지독히 일반적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더하여 이렇게 죽는 것은 대단히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가. 물론 살면서 죄는 지었겠지만 이렇게 화창한 날 아프리카의 시골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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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상황을 모조리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생생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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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널브러져 끙끙 앓는 식으로 하루하고도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고... 창밖에선 해가 지구의 생체시계를 성실히 돌리고 있었지만 우리 둘에게는 닿지 못했다. 거울이 없어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둘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시체에 가까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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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시트가 빠르게 땀으로 젖어 하루에도 주인이 몇 번이나 갈아주었다. 숙소의 여행객들이 우리의 감염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물으러 방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처음 보는 여행객 한 명은 알로에가 말라리아에 좋다며 사들고 들어왔지만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동안 자고 일어나자마자 또 잠에 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드문드문 깰 때마다 더듬거리며 약을 찾았다. 한 알을 찢어 목구멍으로 밀어 넣기도 몇 번, 이제는 개수를 세지도 못할 알약을 집어 검지로 톡톡 쳐본다. 손 안에서 또르르 굴려도 본다. 문득 다른 결의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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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을 먹으면 사는 것이고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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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위의 알약을 물끄러미 응시해본다. 알약에 달빛이 비쳐와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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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는다. 이 작은 알맹이 하나와 내가 완전히 등치 되어버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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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의 무게가 이 알약 무게 정도인가.
참 가볍다. 새털보다 가벼워 웃음이 난다.
불공평하다.
아니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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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내쉬고 관 안에 눕듯 반듯하게 자세를 고친다. 물과 함께 하얀색의 알약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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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흐릿해지며 주변의 사물들이 왜곡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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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느낌이 내 속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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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아득해진다. 점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