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해석을 강요하는 영화계에 "느껴라"고 답한다

정답찾기에 지친 관람객을 위하여. OTT에서 발견하는 영화의 '감각'

by 주노트
TENET_POSTER.jpg 이해하려는 순간, 이 영화는 멈춘다.

<테넷>은 이해하려는 순간 놓치게 되는 영화다. 지금은 OTT를 통해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어렵다는 평가 때문에 관람을 망설인다면 영화가 주는 감각적 체험을 할 귀중한 기회를 잃게 된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현장에서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해석의 대상이라는 없는 증거를 찾는 동안, 버젓이 놓인 보물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러한 증거 찾기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과거 <백 투더 퓨처>를 보며 시간 여행의 과학적 원리를 찾지 않았고, <쥬라기 공원>을 보며 유전자 복제 매커니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 여행은 사건을 해결했고, 눈앞에 나타난 공룡은 우리를 위협했다.

<테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버전' 된 것은 사람이건 물체건 시간이 뒤로 흐른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건 그 뿐이다. 우리는 '시간의 역전'이라는 설정을 통해 결론이 원인이 되고, 원인이 결론이 되는 구조의 왜곡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왜곡된 현실에 갖고 있던 의문이 해소됨으로써 관객에게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설명으로 접근할 때 멈추고, 감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작동한다. 우리가 <테넷>을 어렵게 느낄 필요가 없는 이유와 영화가 주는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짚어본다.


이해할 시간마저 감각으로 전환한 영화


이 영화를 어렵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빠른 전개 속에서 낯선 개념이 동시에 제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 설명하는 개념은 영화의 구조를 알려주기 위한 서론일 뿐이고, 그 설명을 일일이 이해할 필요가 없다. 정작 중요한 건 '시간이 뒤로 간다'는 것 하나 뿐이고, 나머진 극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 장치에 불과하다. 설정의 무결성을 원하는 관객에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장치이지만, 영화가 주는 감각을 체험하고자 하는 관객에겐 그저 부차적인 설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짧은 설명은 오히려 복잡한 이론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에 가깝다.

후반부로 갈 수록 정보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지적은 합당하다. 서로 다른 시간의 축이 대규모로 충돌하는 시퀀스는 인지적 과부하를 겪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부하가 빗발치는 공간은 관객이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물리적 경이를 목격하게 한다. 우리가 모든 인과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면, 영화는 그제서야 독창적 체험을 제공한다.

영화가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오히려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한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회전문을 통과하며 인버전에 관한 설명을 듣는 신에서 순행하는 시간대의 자신과 닿으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Annihilation(소멸)"이라고 답한다. 장황한 설명도, 사라지는 과정에 관한 설명도 필요 없다. 그저 부딪히면 소멸된다는 사실 자체만 중요하다. '할아버지 역설'에 관한 대사도 마찬가지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뒤에 이어지는 "What's happened, happened.(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말만 들으면 된다. 시간을 역행해 과거에 영향을 주지만, 그것마저도 이미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대사는 이후 등장인물간의 관계나 서사적 실마리를 품고 있더라도 '할아버지 역설'이라는 개념과 같이 제시되어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다면 과감히 흘려보내도 된다. 영화의 압도적인 체험에 집중하다보면, 서사의 개연성보다 플롯이 주는 구조적 충격에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TENET_POSTER_2.jpg 시각이 아닌, 구조로 화려함을 만든 영화

정교한 구조가 만들어내는 인지적 해방감


크리스토퍼 놀란은 시간의 왜곡을 구조로 설계하는데 탁월한 감독이다. 특히 <메멘토>에서 결론을 먼저 보여주고 그 이전 시간에 발생한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은 원인이 결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혁신적인 시도였다.

<메멘토>에서 시간의 역행을 서사로 풀었다면, <테넷>은 이 시간의 역행을 하나의 장치로 활용하여 액션으로 풀었다는데 그 독창성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러지?' 혹은 '이 사람은 누구지?' 했던 질문의 답을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찾으며, 원인이 과거에 있을 거라는 익숙한 사고를 무너뜨려 인지적 해방감을 준다. 맞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퍼즐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쾌감, 특히 그 퍼즐이 해결되는 방식을 전혀 예상치 못했을 때의 충격은 영화라는 시각적 매개체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감탄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화려함'이 아니다. 시간이 뒤집히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맞아 떨어지는 논리성을 놀란은 '설명'하는 대신 그 시퀀스를 직접 '보여'준다. 관객은 그 생소한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왜 시간이 거꾸로 가는 지를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정방향의 시간과 역방향의 시간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역동적 행위들을 느끼고 경험하면 된다. 이 기묘한 인과의 교차가 주는 전율은 영화가 단순한 서사의 도구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물리적 대상을 조각해 전시할 수 있는 매체임을 증명한다.


현미경이 아닌, 육안으로 보는 영화


이렇듯 서사를 배제하고자 하는 노력은 음향에서도 드러난다. 대사는 낮고, 효과음은 크게 배치되어 관객의 시선을 '듣는 것'이 아닌 '보는 것'으로 유도하는 연출적 선언으로 읽힌다. 하지만 영화관의 입체음향이 압축된 OTT 환경에서는 더 큰 격차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이 감상을 방해한다고 느껴지면, 대사 시퀀스와 액션 시퀀스가 상당수 분리된 영화의 구조를 이용해 볼륨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는 극장에선 불가능했던, 오직 OTT 관객만이 누릴 수 있는 주도적 체험 방식이다.

이런 불편함에도 이 정도의 영화적 체험을 주는 영화를 최근 영화계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 영화를 봐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시각적인 화려함이 아닌, 구조적인 화려함을 선택한 <테넷>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주인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는 일에 지쳐있는 관객을 위해 주인공의 이름도 없는 이 영화가 존재한다. 영화를 현미경이 아닌 육안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순간 놀란이 준비한 '구조적 체험이 주는 쾌감'이라는 보물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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