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형 구조와 직접적 연출이 흐린 삶과 죽음의 질문
낭만적인 포스터와 봄의 계절감에 이끌려 멜로 영화로 <위 리브 인 타임(We Live in Time)>을 선택한다면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낭만적인 멜로라기보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떠나갈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구조가 무거운 주제를 지탱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멜로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혼란만큼이나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 또한 혼란스럽다. 단속적인 플롯은 관객이 사유할 공간을 주지 않고, 수위 높은 노출신은 주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채 이질감만 남긴다. 관객은 흩어진 주제를 긁어모아 영화의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해야 한다. 앤드류 가필드와 플로렌스 퓨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구조가 관객의 감상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비선형적 구조는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기법이다. 이 영화는 하나의 흐름을 여러 단편으로 분리하여 이를 교차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인물이 마주한 감정의 근거를 관객이 직접 체험함으로써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러한 공유를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다. 단속적 연출이 전환되는 시점의 '갑작스러움'은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단서 없이 이동하는 시간선에 의해 관객을 그 자리에 남겨 둔 채, 플롯만 나아간다. 관객은 그 자리에 멈춘 채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사이 서사는 흐르고 관객은 뒤쫓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톱워치' 같은 단서가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우회전만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안내할 수 없다. 설령 물리적 단서가 주어진다고 해도 감정의 연결이 끊긴다는 점에서 관객의 경로 재탐색은 여전하다. 이처럼 단속적인 감정선 앞에서 관객은 이전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다음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일종의 감정적 멀미를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선 시간선이 변할 때 인물의 감정도 같이 변한다. 심각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갑자기 시간선이 바뀌고, 이내 코믹한 장면이 등장한다. 관객은 심각한 장면에서 느끼던 감정적 여운과 진중한 사유를 내면에 침전시키기도 전에 갑작스레 바뀐 분위기에 휩쓸려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깊이 있는 주제를 포용하지 못한 구조가 관객을 오히려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유머를 통한 톤 조절은 영화를 매끄럽게 해주는 확실한 장치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유머는 거칠게 튀어나와 관객의 발을 잡는다. 관객은 갑작스레 등장한 유머에 의해 기존의 묵직한 심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관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가이드에 의해 강제로 이동하는 타이트한 일정의 패키지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영화는 유머라는 호루라기 소리에 깨진 몰입감을 뒤로한 채 플롯을 따라 다시 이동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여러 번 사용되는 노출신은 전체적인 '영화의 결'과 적지 않은 괴리감을 보인다. 노출 장면은 충분한 미학적 근거가 없을 경우 자극으로 소비하게 된다. 이는 강한 임팩트를 주지만 그만큼 휘발성도 강하다. 감정이 여운으로 남기 위해선 깊은 내면까지 침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강렬한 표현은 여운보다 자극으로 남게 한다.
주제의 무게감을 떠나 표현 방식 자체도 이질적이다. 영화가 가족을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멜로를 차용했다면, 이를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주제와 장면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한다. 농도가 짙은 표현은 이 영화가 진지하게 제시하는 삶과 죽음 혹은 가족의 숭고함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 장면이 주는 강렬함에 의해 주제가 불분명해지고 진중한 사유를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손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우회적으로 표현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견고히 할 수 있다. 연출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된다. 직접적인 표현은 관객을 '관찰'하게 하지만, 우회적인 표현은 이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더 강한 심상과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의 미장센은 그 장면이 주는 직접적인 의미 외의 관객이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할 때 의미를 가진다.
※ 이 이후의 글은 <위 리브 인 타임(We Live in Time)>의 핵심 서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전인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산 장면이 상당히 길고 직접적이라는 것도 그 장면이 필수적인지에 관해 모호함을 남긴다. 두 사람의 역경과 그 끝에서 맞이하는 탄생의 숭고함이라는 의미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상당히 직접적이었다. 출산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 숭고함을 낳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그 장면을 길고 직접적으로 그리면서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있다. 직접적인 표현은 그 의미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고정한다. 그 출산 장면에서 연출이 주고자 하는 지향점이 숭고함이나 어려움인지, 육체적 아픔이나 비위생적인 공간이 주는 불쾌한 감각인지 확신할 수 없게 한다. 그 출산의 고통과 상황의 불쾌함이 탄생의 숭고함보다 먼저 읽히며 방향을 흐린다.
직접적인 표현은 관객에게 제한된 틀을 부여한다. 시각적 표현이 직접적일수록 의미가 단순하고 선명하게 보이지만, 그만큼 틀은 좁아져 관객이 사고와 심상을 확장할 기회를 잃는다. 천장이 가까워 무늬가 잘 보일수록, 그만큼 뛸 공간은 부족하다. 직접적인 표현의 반복과 진중한 주제 의식의 제시가 상충하며 이 서사가 주고자 하는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희석한다.
갑작스러운 결론의 제시는 영화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게 한다. 영화의 서두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준비해 가는 웰-다잉의 과정을 보여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연인 간의 사랑과 가족의 형성 과정에서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 주인공이 삶이 끝난 이후에도 자녀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메시지로 끝난다.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가족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단서가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영화의 주제를 '자아실현'이나 '남겨진 시간의 투쟁'으로 감상하던 관객은 그 주제가 '가치 있는 유산'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감정적 몰입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해석'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은 주인공 중심의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주인공의 마지막 말을 통해 이전 과정을 재해석해야 한다. 관객은 자신이 이어온 인지적 혹은 정서적 노력이 무의미해진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이어온 서사에 대한 이해가 주인공의 한마디에 의해 무효화되면서, 몰입의 자리는 허무함으로 대체된다. 관객은 자연스러운 흐름 대신, 급격한 선회에 의해 사유하던 주제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영화는 멜로라는 형식 안에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하려고 한 의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루는 것과 주제의 초점을 흔들어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다르다. <위 리브 인 타임>은 하나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고, 관객이 주제를 분명하게 따라갈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미장센은 관객이 스스로 향유하도록 열어두기보다, 눈앞에 직접 드러내는 것에 급급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충분히 좋은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연기력과 가볍게 풀어내고자 한 시도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구조를 활용하는 과정의 실패와 자극에 의존하는 연출은, 그 가능성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매몰시킨 실책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