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거핀은 정말 '싸이코'를 설명하는가

히치콕의 정교한 설계가 만든 '싸이코'의 서스펜스

by 오르
※ 이 글은 영화 <싸이코(Psycho)>의 주요 결말과 반전 등 핵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Psycho_POSTER.jpg 히치콕의 '4만 달러'는 정말 맥거핀인가

'맥거핀(Macguffin)'이라는 말은 히치콕이 구조적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뤼포'의 인터뷰는 그를 흥행 감독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주 호출되는 개념이 맥거핀이었다. 히치콕이 맥거핀에 대해 많은 말을 남겼음에도 지금의 정의는 하나로 합일되지 않는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싸이코(Psycho)>의 '4만 달러'를 맥거핀의 대명사로 규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해석이 되었다. 이젠 정답처럼 굳어진 이 통념에 동의하기엔 <싸이코>의 4만 달러는 영화 내에서 정교한 플롯의 핵심 도구로 기능한다. 이 글을 통해 맥거핀의 교과서적 예문인 4만 달러의 기능을 재해석한다. 또한 맥거핀을 배제하더라도, 왜 히치콕을 여전히 서스펜스의 대가로 불러야 하는지 <싸이코>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맥거핀, 광활한 정의가 만든 이해의 미로


히치콕이 말한 맥거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등장인물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한 대상이지만, 관객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서사적 행동에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만, 관객은 그것보다 등장인물에 더 관심을 둔다. 그의 영화 <오명>의 '와인병' 혹은 '와인병 속 우라늄'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히치콕은 이 사례를 이야기하며, 병 속에 우라늄이 싫다면 다이아몬드로 바꾸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적어도 <오명> 사례에서는 맥거핀의 구체적 실체가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정의만으로는 그 기능적 의미에 정교함을 부여하긴 어렵다. 많은 서사는 생명, 감정, 관계, 혹은 물리적 대상 등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인물의 활동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관객 혹은 독자에게 여러 정서적 반응을 느끼게 한다. 이런 기능을 하는 모든 대상물을 맥거핀으로 부를 수는 없다.

용어의 개념이 광범위하면 사용하는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맥거핀이라는 단어가 왜 이토록 자주 사용되었는지를 추론해 보자면, 당시 각본 집필을 시작할 때 구체화하기 위한 대상물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 창작의 트리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히치콕이 말한 광범위한 의미에서도 <싸이코>의 '4만 달러'가 맥거핀에 부합하는지 여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4만 달러'는 금전적 대상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금전적 대상물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관객의 배경지식이 인물의 충동, 불안 등을 설명하지 않아도 같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만약 이것이 금전적 대상물이 아니라면 마리온의 도주 충동을 설명하지 못하고, 이는 서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4만 달러'를 '정부 기밀'로 치환하는 순간, 소시민 마리온이 품었던 지극히 사적이고도 원초적인 도주 원인은 설 자리를 잃는다. 앞서 말한 '대체 가능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인물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한 대상이라는 점도 분리해서 봐야 한다. 중반부까지는 이러한 요소가 충분히 반영된다. 4만 달러를 둘러싸고 도주와 추격을 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의 내용은 다르다. 베이츠 모텔 이후부터는 4만 달러의 중요성은 상실되고, 실종자의 생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음의 두려움, 살인의 잔혹함이 관객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한다. 이제 인물은 '4만 달러'가 아닌 '마리온'을 찾는다.


설계된 자연스러움: 서사의 중심 이동


사실 '4만 달러'가 맥거핀이냐 아니냐는 <싸이코>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쟁점이 아니다. 중반 이후의 전환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맥거핀의 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이 전환된다는 것이다. 마리온이 가진 불안의 대상이 '추격'에서 '생명의 위협'으로 전환된다. 이때 시점이 베이츠로 바뀌며 불안의 방향이 다시 '추격'으로 바뀐다. 이후 결말까지 관객은 '추격'과 '생명의 위협'이 수시로 전환되며 관객이 한 종류의 불안에 익숙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비대칭의 미학: 누가 무엇을 아는가가 만드는 긴장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맥거핀보다 더 큰 장치들 위에서 작동한다. 그중 하나가 정보의 불균형이다. 관객과 인물 사이에 정보를 불균형하게 배치해 긴장감을 유도한다. 히치콕은 이런 예시를 들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 아래 폭탄이 장착되어 있다. 이 폭탄이 그냥 터진다면 관객은 15초의 놀라움(Surprise)을 경험한다. 하지만 폭탄이 1시에 터진다는 것을 관객이 미리 알고 있다면 15분의 서스펜스(Suspense)를 느끼게 된다. 관객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1시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부여받음으로써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싸이코>에서도 활용되었다. 마리온의 도주를 뒤쫓는 경찰의 존재, 마리온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 베이츠의 살해 현장을 은폐하고 있다는 정보 등은 관객에게 먼저 주어진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통해 등장인물의 위협적인 상황을 인지한다. 등장인물은 이 정보를 모르기에 위협적인 상황은 더 심화되고,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수록 더 강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psycho_still_3.jpg 제한된 정보는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긴장과 몰입을 만든다

이 영화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증명한다. 감독은 특정 부분에선 교묘하게 말을 아낀다. 관객에게 제한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객이 이를 상상하게 하고, 이러한 상상이 긴장감을 유발하게 한다.

마리온이 도주를 시작한 순간까지도 그녀의 충동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제공되지 않는다. 이미 도주를 시작했지만, 관객은 즉각적으로 도주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근무지의 사장과 눈인사를 나누며 아직 일상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어 긴장 상황임을 암시한다. 경찰을 만나는 상황이 되어서야 관객은 확신한다. 관객은 이러한 인물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해야 하고, 이러한 상상은 스스로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또한 상상은 불투명한 결론을 만든다. 이는 뒤에 이어지는 상황을 확신할 수 없게 하여 어떤 장면이 이어질지 몰라 긴장을 유지하게 한다. 베이츠 어머니의 존재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관객은 있지만 보여주지 않는 어머니의 미스터리함을 통해 그녀가 어떤 인물일지, 그녀를 통해 어떤 장면이 일어날지 스스로 예상해야 한다.


'맥거핀'은 흔한 말이 되었지만,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히치콕은 교묘하게 설계된 영화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직접 느끼도록 한다. <싸이코>는 이러한 영화적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비평적 언어로 그의 영화를 소비해 왔지만, 정작 영화적 체험을 원하는 관객은 상영관을 찾기가 어렵다. 이 영화에서 맥거핀을 찾기 위한 노력은 정교한 영화적 성취에 의해 압도당한다.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단어의 함정에 빠져 헤매지 말고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충돌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라는 안내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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