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여름휴가
사회인이 여름휴가를 대하는 눈빛을 보면 오래간만에 찾아온 안광의 반짝임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일 년 동안의 노동을 보상받겠다는 그 한 서린 눈빛을 본 적 있는가.
휴가 마지막 날의 그들을 모습을 보았는가.
그것은 사자와도 같다. 늙어빠진 사자말이다. 그의 힘 잃은 시선이 허공을 표류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며칠 전의 총기 넘치는 그것과 대비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낸다.
회사규율을 어기지 않고 마땅히, 응당 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치를 본다.
'연달아서 5일 쓰면 싫어하려나?'
'공휴일 붙여서 쓰고 싶은데, 싫어하려나?'
'그냥 나를 싫어하려나?'
'...'
위, 아래로 치이며 휴가 승인을 받아내고 나면 이제는 예약 지옥이다. 오천만 사회인들과의 대결이란. 부지런한 사람들의 재빠른 예약 솜씨에 놀라며 다음 휴가 때는 나도 민첩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매년 해왔던 결심인 걸 깨닫고는 머쓱한 태도로 미래의 나를 바라본다.
여름휴가 첫날은 기세등등하다. 일 지옥을 벗어나 반짝거리는 안광을 장착하고 호기롭게 나서면 이제 인파지옥, 폭염지옥이다.
아무래도 여름에는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게 낫-
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 속에서 꾸역꾸역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의 한쪽 구석으로 들어가 시작과 함께 고갈된 체력을 한탄한다. 내년에는 체력을 기르자고 다짐하지만, 그마저도 매년해왔던 다짐인 것을 깨닫는다.
휴가의 침식에 따라 안광 또한 침식되고 마지막 즈음 되어서는 숨겨두었던 동태눈알이 발굴된다. 그것을 장착한 상태로 또다시 여름휴가 D-364를 세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름휴가를 생각하면 일반적인 쉼의 모습을 떠오른다. 사회인으로서의 그것을 겪은 지금은 대견한 마음이 함께 든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일 년 동안 고생하고 당당히 한숨 돌리는 당신들이 나는 참 기특하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이렇게 기특해하니,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 온몸을 쓰다듬으며 휴가의 막을 올리는 게 어떨까.
그리고 막을 내릴 때도 일 년 동안 수고할 자신의 몸을 토닥이는 건 어떨까.
애쓴, 애쓸 나에게 그 정도의 애틋함은 허용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