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구 Jul 05. 2023

잊고 싶지 않다, 잊고 싶다

여행과 회억


절대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려온 사람인 양 주저 없이, '스무 살 엘에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할 것이다. 누구나 그런 순간 하나는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은가.


동네에 레돈도비치(Redondo Beach)가 있었다. 설렘에 마음 졸이던 첫째 날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은 각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에 엘에이에서 친해진 또래 아이들과 종종 레돈도에 갔다. 엘에이에서의 마지막 날 이미 익숙해진 그곳에 들렀고, 첫날과 다른 익숙한 느낌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우울한 눈빛을 한 나를 친구들은 다독였고 공항행 차에 몸을 싣기 전에는 이윽고 울음을 터뜨렸다. 차 문을 등지고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야 익숙해졌는데, 아마 영원히 안녕이겠지. 나는 '영원히'를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변하게 되고 말 거야. 지금의 모습과는 다를 거야. 모든 게 익숙해진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동네의 흔한 비치를 보며 놀라는 사람도, 난생처음 보는 한국인을 친구라고 부르며 놀아주는 사람도, 한 달 남짓 본 사람들과 헤어지며 우는 사람도 그때는 없을 거야.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영원히' 안녕이야.


그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나중에 또 와서 우리들과 레돈도비치에 오면 된다고. 우리는 어디 가지 않아. 너는 학기 동안 돈을 모았다가 비행기 표를 사고 다음 방학에 오면 돼. 아주 간단한 일이야.


아마 그들도 알고 있지 않았나 싶다. 친구가 쉬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내 시선을 보았으니 말이다.



스무 살 여름방학을 지나 그로부터 몇 번의 방학이 모두 소진되고 취업을 하고 짧은 여름휴가들이 지나고 퇴사를 하고 보니, 이제는 그곳에 친구들이 없단다. 하나둘 흩어져 취업을 하고, 미국 각 주로 대학원을 가고 그랬다고 했다.


'이 봐, 내가 말했지?'


그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절대 잊고 싶지 않으면서도

절대 잊히지 않고,

그러면서도 잊고 싶다.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순간이 그렇다.



추신 - 여러분의 순간이 궁금합니다.


<사진> 레돈도비치행 이정표
매거진의 이전글 주구씨, 그러다 지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