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곳 그라나다는 무지 덥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태양빛은 마치 시력을 앗아가려는 눈알사냥꾼처럼 맹렬한 기색입니다.
타라고나는 바르셀로나보다 더웠고
그라나다는 타라고나보다 더우니
다음 정착지는 어느 정도일지
참
기대가 됩니다.
여행 기간 동안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만, 역설적이게도 매일매일 몇 장 분량의 글을 써내고 있습니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의 나열뿐인 일기의 형태이지만, 그것을 대면할 때마다 ‘진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커집니다.
글을 쓰지 말자고 다짐함과 동시에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다니, 과연 청개구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여행에 대한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무엇인지, 왜 여행이 필요한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와 같은 정말로 중요한 것들 말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합니다.
다음 도시에서는 생각이 나려나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그라나다로 돌아와 말하자면,
이곳의 낮은 고요합니다.
결국은 눈알사냥꾼인 태양에 굴복하여 숙소에 대피해 있기 때문이죠.
이른 아침에 나갔다가 골목골목을 헤집어 놓고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사냥꾼이 기승을 부리기 전에 얼른 숙소로 돌아와 냄비밥을 해 먹습니다.
김치불닭볶음밥이나 참치계란볶음밥 같은 꽤 한국적인 음식을 만들어, 알람브라 궁전이 보이는 숙소의 한 곳에서 먹습니다.
그라나다보다 더 그라나다 같은 지금의 숙소에서 저는 꽤 열심히 혈중 애국 농도를 유지합니다.
아직도 과격한 태양을 그저 방관자 시점에서 바라보며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그러다가 결국은 ‘아- 글을 쓰고 싶다-’ 하며 펜을 듭니다.
이곳에서 대피자가 되었다가 애국자가 되었다가 방관자가 되었다가 하는 것을 저는 꽤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별 거 없죠?
모쪼록 잘 지내시고요.
저도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심심한 인사로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별 일 없이 지내다가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