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과 동공
'시차적응'이라는 말 뒤에 숨어 지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의 경계가 허물어진 저 차원의 일상이랄까.
잠의 세계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3류 영화 같은 꿈 사이를 표류하고(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재밌기까지 하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정신병동의 누군가처럼 축 늘어진 동공으로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고체로 하여금 세상을 훔쳐보고 있다. 그곳에 데려다가 두면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마 내심 찾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풀어진 동공이 제자리를 맞춰가는 때가 있다.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이다.
역시 여행이란 건 도피인가.
옳고 그름을 따질 넋은 없고 그 때문에 나는 지독해지기도, 초점을 되찾기도 한다는 것만은 알겠다.
또 다른 도피를 계획하며,
나는 요즘 그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