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람
음, 사람을 좋아하나요?
괴상한 질문이지만, 대답해 보자면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간결한 대답 안에 많은 주저가 있지만 역시나 대답은 NO다. 해서,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아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의 대답은 과거형의 NO다.
스페인의 타라고나는 바르셀로나로부터 기찻길을 따라 약 한 시간 반 떨어진 작은 바다 마을이다. 물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몸을 적시지 않고는 못 배기는 황홀한 바다가 있는 곳이다. 수영을 하지 못하고 딱히 할 생각도 없던 필자를 수생동물로 만들 만큼 말이다.
퇴사자 겸 물개로 활동하던 여행동반자 S는 시크하고 독립적인 성향의 소유자다. 바다수영에 대해 막연한 걱정이 있던 나와 다르게 S는 그것을 기대하고 고대했다. 45도에 육박하는 따가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나의 움직임은 경직되어 마치 80년대 SF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S는 수경 두 개와 오리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짐짓 시크한 표정으로 "쓸래?" 했다. S가 수영 초보자 시절에 사용했다는 귀마개 일체 수경과 그의 어머니가 유럽여행 기념으로 사주셨다는 오리발을 장착하고서 나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물에 떴다. 하지만 어색한 로봇 모션만은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은 개구리처럼 그저 둥둥 떠다녔다. 수경을 썼는대도 졸아버린 겁쟁이는 눈을 꼭 감고 경직된 첫 감각을 맛보았다.
그러다 수 초가 지난 후에 내 팔을 잡는 손길과 먹먹한 소리가 들렸다.
"주구야! 숨 쉬어야 해! 숨 쉬어!"
내가 죽은 줄 알았다는 S와 마주 보며 한참을 깔깔 웃었다. 그녀는 바닷속에서 숨 쉬는 법을 알려주고는 시크하게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곤 우리는 여행 동안 타라고나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수영을 했다.
혼자였다면 수영을 할 수 있었을까? 머나먼 스페인의 타라고나에서.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을까 봐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숨 쉬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깔깔 웃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귀국을 하고 24/7 집순이로서 만족스러운 활동을 하다가 종종 그때의 웃음이 생각난다. 그러면 다시금 타라고나의 수면 아래로 돌아가 마음껏 표류하고는 S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 우리 또 여행 갈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