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감한 여행의 최후는 곧 무기력한 죽음이다
꿈을 꾸었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꿈에서의 나는 여전히 낯선 곳을 헤매고 있었다. 아니 더 격렬히 헤매고 있었다.
이전에 꿨던 악몽들과 비슷한 부류의 헤매는 꿈이었다.
사람이 없는 정류장이 보였고, 버스가 있어서 올라타면 그곳엔 나 혼자였다. 지도나 핸드폰도 없지만 원하는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 탔으니 내려달라는 말도, 그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버스기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고자 하는 곳과 반대로 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차창 밖의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 무인無人이 주는 적막이 나를 옭아매어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불안해졌다.
떠나온 그날의 런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먹구름이 채도를 앗아가 주위는 잿빛을 띄었다.
한 작가님이 말하기를,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면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이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감각은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으며 우리가 곧 죽을 존재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슬픈 일 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값지게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모든 경험을 일회적으로 각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멀지 않은 과거에 내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순간과 장소와 사별한다는 예감으로 여행의 끝을 눈물로 물들였던 귀중한 기억이다. 낯선 환경이 주는 설렘과 거기서 비롯된 불안감을 정통으로 맞으며 힘들어하면서도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며칠을 지새우며 여행의 끝이 유보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최근의 여행에서는 달랐다. 여행에서의 스트레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감해지기를 택했다. 이전 몇 년간 버거운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며 생긴 자동 프로그래밍일 것이다. 무감해지기.
하지만 무감한 여행의 최후는 곧 무기력한 죽음이다.
이번 여행을 여행이라고 불러도 될까.
곧 죽을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감하게 그 끝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