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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구 May 16. 2023

엄마 생각

엄마 뱃살



느지막이 일어나 누룽지를 끓이고 엄마표 반찬을 꺼낸다.


왜 이런 순간에 엄마 뱃살이 생각날까.

침대에 누워 어머니의 말랑하고 푸짐한 뱃살에 장난치며 재밌게 웃었던 어느 밤.




입사를 하곤 1-2년 정도 후부터 집에 내려가는 게 정말 싫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는 그들이 의미 없이 던진 말과 눈빛에도 상처를 받았다. 그러곤 서울 우리 집에 돌아와서 혼자 막 울고 그랬다. 그래서 본집에 자주 내려가지 않게 되었었다. 부모님은 갑자기 자취를 감춘 딸내미에게 사뭇 섭섭한 티를 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여렸고, 아팠고, 그래서 숨을 수밖에 없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만, 이번엔 좀 달랐다. 나는 오빠를 좋아한다. 나와 오빠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어색하다. 참을 수 없는 관계의 어색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 나와 많이 다른 오빠는, 마음이 강하고 부지런하고 의리 있고 그리고 나를 아껴준다(오빠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낌 받는다 생각하니 됐다). 오빠 얘기를 시작하면 글이 길어지니 나중에 따로 오빠 헌정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 아무튼, 그런 오빠가 내려온다고 해서 나도 헐레벌떡 내려갔다. 이렇게 쓰니 정말 오빠를 많이 아끼는 동생 같지만, 어버이날이 껴있던 것도 이번 귀향의 큰 이유 중 하나다. 생각해 보니 어버이날보다 오빠가 우위에 있던 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번엔 꽤 오래 있다가 올라왔다. 그리고 꽤 잘 지내다가 왔다. 상처나 눈물바람 대신 어머니의 웃음을 가지고 올라왔다.


아직 애같이 구는 막내딸 때문인지 어머니, 아버지는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해서, 평일에 느지막이 일어나면 부모님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가 해둔 잡곡밥에 어머니가 씻어둔 열무를 팍팍 넣고 양푼에 비벼먹으며 커다란 티브이에 유튜브를 연결하여 침투부를 보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출근하고 없는 날, 밥을 먹으며 혼자 무한도전을 보며 꿈을 키우던 어린 주구가 다 커서 티브이로 침투부를 보는 허우대 멀쩡한 퇴사자로 성장했다는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듯한 느낌이 드는 건 매운 태양초고추장 때문일 것이다. 60인치짜리 자유를 만끽하다가도 괜히 현관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움찔했다. 그 모습이 너무 찌질해서 다시 한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래도 고추장이 아주 매운 게 확실하다.


퇴사한 주제에 밥도 다 먹고 침투부도 맘껏 즐겼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낮잠 자면서 악몽도 꿨다. 그 주제가 안타까워서 살짝 뻔뻔해지기로 했다. 아니! 내가! 취업해서! 일하다가! 몇 년 만에! 본집에서! 좀! 쉬는 게! 그리 잘못됐남?? 하며 말이다. 북 치고 장구 치고다. 근데 이상하게 그렇게 긴장을 살짝 놓으니 본집에 있는 게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랫동안 집에 편하게 있었다. 엄마가 해준 밥 먹고, 내가 부모님께 음식도 해주고, 집안일도 하고, 엄마와 유치하게 장난치고 웃고, 뱃살 만지며 웃고 그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열무양푼 비빔밥이다. 장난이고, 어머니 웃음이다. 그것에는 왠지 모를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가 서려있다. 침대에 누워 어머니와 이런저런 의미 없는 장난을 치고 웃고 늦게 잤다. 우리는 꽤 유치한 모녀다. 대화 수준이 초등학생과 견주어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용돈을 주내마네(물론 비루한 퇴사자이기에 어머니가 주셨음. 불효자는 웁니다.) 하며 추격전을 찍다가 깔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웃음이 하나의 흑백사진처럼 남아버렸다. 사진을 슥 둘러보다가 아- 나 웃는 거 엄마 닮았네 하는 생각이 들자 내장 한켠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그뿐이다.   




이번 쉼에 그것을 많이 본 게 이제야 기쁘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결국에는 약간 울음이 날 것만 같이 눈이 뜨거워진다. 



아마 우리 집 고추장이 많이 매운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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