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이사하면 가장 먼저 들였던 생필품으로는 발판이었다.
화장실 문 앞에 발판을 두어야 집에서 비로소 생활이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화장실 앞에 발판이 없으면 불안하고 맨발로 밖에 있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발판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화장실과 발판은 한 몸과 같았다.
발을 씻고 나올 때나 샤워를 하고 나올 때나 발의 물기를 치워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몸은 수건으로 닦더라도 발만 큼은 발판에 맡겼다.
이유는 없었다.
발판이 세탁하느라 가끔 없을 때야 수건이 빈자리를 대체했다.
어느 날 세탁하고 반듯하게 포개어진 발판을 보고 있는데 바꿔줄 시기가 보였다.
이케아 매장에서 직접 보고 구입한 아이들이었다.
좋은 발판의 조건은 의외로 까다롭다.
너무 무겁고 두터우면 세탁이 힘들다.
가벼우면서 물 흡수력이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직접 만져보며 구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케아에 또 가자니 거리도 있고 알아보는 것 자체가 번거로웠다.
그때 생각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발판 없어도 되지 않을까?!'
무방비로 찾아온 의문에 나는 아주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래. 한번 없이 살아볼까?!
오래된 발판을 그것도 세탁해서 뽀송해진 발판을 나는 미련 없이 종량제 봉투에 비워냈다.
평생을 함께 해온 물건을 비우는 것은 내면에 커다란 공백을 생성시킨다.
'홀가분함' 만큼 이럴 때 잘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없으면 불편할까 싶었지만 발판의 빈자리는 금세 보드 라이 메꿔졌다.
대신 수건의 역할이 더 늘었다. 그렇다고 문 앞에 수건을 항시 두진 않는다.
비우고 보니 무언가 항상 밟아야 한다는 것도 걸리적거리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의 촉감은 가볍고 경쾌하다.
하여 발에 물이 묻으면 수건을 깔고 쓱 닦고서 세탁 바구니에 낸다.
샤워를 하고 올 때도 몸을 닦고서 맨 마지막에 발바닥을 훔치고 빨래 바구니에 넣는다.
물론 수건의 사용이 더 잦아진 만큼 세탁 주기가 빨라진다.
하지만 며칠에 한 번씩 따로 모아둔 발판을 개별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판과 같은 연유로 주방 발 매트도 비웠다.
주방 매트도 발 매트와 비슷한 아이템이다. 주방 수전 앞에 쌍둥이처럼 매트도 항상 함께였다.
설거지를 할 때 물이 튀거나 서있을 때 발에 쿠션감을 제공하는 등등의 편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편의만큼의 불편도 찾아온다.
청소 때마다 기다랗고 제법 무거운 매트를 싱크대 위에 옮겨주고 청소 후에 다시 깔아줘야 한다.
주기별로 빛바랜 매트를 세제로 씻어 말려주기도 해야 하고.
설거지는 그때그때 바로 하기에 오래 서있지 않아서 발판이 없어도 크게 발바닥이 불편하고 하지 않는다.
물기도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에 비해 걸리 적 거리는 제법 큰 아이가 사라졌기에 주방 청소가 더 간결하고 쉬워진다.
쓰레기통도 방마다 하나씩 있었다.
막상 버릴 때는 편하고 쉽지만 하나하나 종량제 봉투에 버릴 때면 결코 쉽지 않다. 복잡하고 번거롭기만 하다.
모든 물건이 그렇다. 관리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쓰면 쓰레기통은 특히나 청결에 주의하지 않으면 냄새도 나고 외관상으로도 거슬린다.
이런 연유로 쓰레기통을 모두 비웠다. 이제는 종량제 봉투 하나만 세탁실에 두고 쓴다.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종량제 봉투 자체가 쓰레기통이 되었기에 관리 자체가 필요 없다.
반면 버릴 때는 번거롭기는 하다. 그렇기에 그만큼 쓰레기를 덜 만드는 습관이 든다.
여러 개의 통을 관리하고 비우는 행위보다 그때그때 비워내는 작은 행동들이 훨씬 단순하기에 쓰레기통은 이제 우리 가족 라이프에 사라졌다.
아이들이 신생아였을 때는 물티슈와 한 몸이었다.
돌아서면 손에 물티슈를 달고 살 정도로 필요도 많았고 소모도 많았다.
그러다 물티슈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물티슈를 쓸 때마다 마음에 가시가 자랐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픈 지구가 아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티슈 한 장이 분해되기까지 몇백 년이 걸린다는데 한 장을 쓸 때마다 지구에 몇 백년의 빚을 지는듯했다.
처음부터 물티슈 사용을 바로 멈추지는 못했다.
사용을 줄이기 위해 소창 행주를 들였다. 행주 사용을 늘리고 물티슈는 줄여갔다.
물티슈의 편리함은 삶 곳곳에 물들어있었기에 이를 비워냄에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물티슈뿐만 아니라 생활에 플라스틱 제품들을 하나씩 줄여가고 있다.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를.
1회용 플라스틱 빨대 대신 계속 쓰는 실리콘 빨대를.
플라스틱 솔 대신 나무 솔을.
1회용 비닐 대신 소창 주머니를.
플라스틱 주방 세제 대신 설거지 비누 바를.
플라스틱 샤워볼 대신 천연 주머니를.
플라스틱 사용은 지구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우리 몸에도 좋을 리 없다.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탈 플라스틱의 노력은 삶에 보다 이로운 순한 작용을 해준다.
환경을 생각하고 미니멀라이프의 간소함을 좋아하더라도 현실적인 실용의 뒷받침이 없으면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일뿐이다. 는 게 나의 지론이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활의 질이 현저히 감소하면서 까지 추구할 이상은 내게 없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는 이유도 제로 웨이스트에 마음이 가는 이유도 모두 현실의 삶이 가볍고 조화롭기를 바라는 연유이다.
하여 현실에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오래도록 꾸준히 실제로 이어갈 수 있는 미니멀라이프와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고 있다.
행주와 걸레를 바지런히 사용하지만 물티슈의 빈자리는 생각 보다 컸다.
어깨에 피곤이 가득하여 행주를 빨기 싫은 날이거나. 엄청나게 먼지 가득한 곳이 보일 때. 잊혀 갔던 물티슈가 떠오르곤 했다.
이를 채우기 위해 나만의 물티슈를 만들어 쓰고 있다.
대나무 키친 타올과 주방용 살균수의 조합이다.
키친 타올은 100% 대나무 펄프인 천연 소재이다. 일반 나무를 베어 만드는 종이가 아닌 '풀'로 분류되고 생장속도가 빠른 대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키친타올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쓰레기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겠지만 너무 힘들게 이어가다가 터져서 다시 물티슈를 뽑아 쓰는 것보다는 훨씬 이롭기에.
비상용으로 나만의 물티슈를 만들어 쓰고 있다. 키친타올에 순한 천연 성분 주방 살균수를 뿌려서 닦아주면 소독도 되고 마음도 편안하다.
주는 행주와 걸레가 하고 있고 틈새의 불편함을 이 물티슈가 채워주고 있는 샘이다.
발판,
주방용 매트,
식기 건조대,
쓰레기통,
물티슈,
플라스틱 수세미
플라스틱 레고(부피 차지가 크고 플라스틱의 집합체라 더는 사지 않는다) 등등을 나는 이제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내 삶에 더는 불필요한 것과 계속 필요한 것을 명확히 구별함을 의미한다.
나와 가족이 어우러지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원하는 지향점을 하나로 잘 모아 보통의 일상에서 무던히 걸어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는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는가.
같은 삶의 경계선에서 외부의 기준을 따르기 보다 나와 가족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내면에 귀 기울일수록 삶은 투명하고 선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