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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소박한 집밥

by 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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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집밥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오븐보다 큰 스토브에 불을 때우고 직접 반죽을 해 빵을 굽고, 나무에서 딴 열매를 볶아 잼을 만들어 먹는 이치코의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차분했다.

특별한 재료나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다. 시절의 식재료들이 간단하게 뚝딱 차리는 정갈한 집밥이었다. 손수 만들어가는 하루 세끼의 담백한 과정은 주인공도, 영화<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정화되는 쉼을 선사했다. 도시의 소모되었던 시간은 한 끼를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땀을 흘리며 집중하고, 간혹 찾아오는 엄마의 향수로 인해 회복되어 갔다.


"가장 따뜻한 위로는 말 없는 음식 한 그릇이었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집밥 한 그릇은 우리에게 말 없는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집밥이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는 배경에는 우리의 바쁜 하루 속 흐름이 있겠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돌보다 보면, 나를 위해 오롯한 밥 한 끼 차려먹는 것은 호사로운 일과가 돼버릴 수 있다. 그 빈자리는 손쉬운 인스턴트 푸드나 배달음식이 쉽게 대체한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맛있을 수는 있지만 결코 집밥이 주는 포근한 위로는 찾을 수 없다. 먹을 때는 좋지만 다 먹어갈 때쯤 떠오르는 높은 칼로리와 그에 비해 영향가 없는 성분들은 마음을 헛헛하게 태운다.

영화가 끝나자 결혼하면 이치코처럼 수월하게 하루 세끼 집밥을 해 먹겠지. 라고 어림짐작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흔한 반찬인 콩나물 무침 하나만 하려 해도 반 나절이 걸렸다. 마트에 가서 싱싱한 콩나물을 골라 사 오고, 집에 와서 씻고 자리를 잡아 앉는다. 30분여간 쉼도 없이 꼬리를 제거한다. 끓는 물에 데치고 식히고 양념하고...

수북이 쌓여있는 콩나물 꼬리들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식탁에 콩나물 무침이 올라오는 날이면 나는 반찬 투정을 자주 했다. 다른 맛있는 반찬을 찾으며 투정을 부리던 철없는 아이의 모습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이 단순해 보이는 반찬 뒤에 엄마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숨어있었는지를. 시장에서 값을 깎고 집에 와서 하나하나 정성껏 꼬리를 떼고 요리해 식탁 위에 차렸을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콩나물 무침만큼 단골 메뉴였던 된장찌개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만 요리하기만 해도 부엌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온갖 그릇과 도구들이 한가득이고, 이미 진이 빠진 내가 함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 1, 반찬 3개 이상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했다. 요리가 손에 익지 않아 레시피를 훔쳐가며 식탁을 한 상 채우는 일은 고된 노동이었다.

가만히 앉아 반시간 넘게 콩나물 손질을 완벽히 해내고 콩나물국을 끓이고 무침을 하고 메인 반찬에 밑반찬 두 개 더하고 나면 노동이 맞다. 덕분에 집밥보다 사 먹는 외식이 더 쉽고 좋았다.

건강한 집밥을 위해 마트에서 장을 두둑이 봤으면서도 또 노동할 생각에 배달 음식을 시킬 때도 적지 않았다.



집밥은 부엌을 닮는다. 복잡하던 부엌에도 비움이 찾아왔다.

중복으로 갖고 있던 식기들을 비우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자 장 내부에 빈 공간이 늘었다. 덕분에 표면에 올려두었던 것들을 모두 내부에 보관하게 되었다. 싱크대 표면 위를 차지하던 소형 가전, 식기와 각종 도구들이 사라져 갔다. 어느새 말끔한 표면이 생긋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엌이 말끔해질수록 부엌이 만드는 요리 또한 점점 단순해져 갔다.

군더더기가 사라지고 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부엌은 미사여구가 사라진 소박한 집밥의 배경이 된다.


어느 날인가 콩나물 본연의 그대로 모습으로 조리해 보았다. 콩나물국 맛이 똑같은 것이다. 콩나물무침도 맛이 똑같았다. 식감이 조금 길어질뿐이다. 놀라운것은 영향학적으로 꼬리까지 섭취하는것이 더 좋다고 한다. 힘들게 다듬는 이유는 미관상 그리고 조금의 식감 때문이였던것이다. 실상은 이도 금세 적응되어 문제랄것도 없었다. 깨끗이 씻어만 주면 되니 번거로웠던 준비 과정이 대폭 줄었다. 더이상 힘들게 콩나물 노역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해서 콩나물 꼬리를 떼지 않기로 했다.

이때부터 간편하지만 건강한 집밥에 관심이 생겼다. 건강한 집밥을 더 단순하고 즐겁게 누리고 싶었다.

조리 중에 중복되는 과정을 되도록 줄이고 그릇과 조리도구 사용도 최소화한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 두부무침을 할 때면 전에는 브로콜리와 두부를 다른 냄비에 데쳤다면 이제는 두부를 먼저 데치고 그 물에 그대로 브로콜리를 데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리 시간과 과정 그리고 설거지 수도 줄일 수 있게 돼 집밥이 더 쉬워진다.

(스파게티도 팬에 면을 삶고, 물을 비우고 그 팬 그대로 면을 볶으면 추가로 냄비 사용을 줄일 수 있다.)

꼭 완성된 음식을 새 그릇에 담을 필요도 없다. 스텐 냄비와 스텐팬으로 바꾸고부터

완성된 음식 그대로 팬을 또는 냄비를 식탁 위에 올린다. 이렇게 과정을 하나라도 줄여나가면 집밥이 쉬워진다.

이런 연유로 원 팬 요리를 즐겨 먹는다. 샤브샤브나 전골류를 특히 자주 먹는다. 재료만 씻고 썰고 준비해서 담아 끓이면 뚝딱 금세 건강한 집밥이 만들어지기에.

잔뜩 건강한 재료로 장을 보고선 이미 지쳐 배달 음식을 시킨 경험은 누구에나 있을 것이다.

집밥이 힘들고 배달주문은 쉽기 때문이다. 편하기 위해 배달 음식을 먹어도 편하지 않다. 와장창 쌓인 플라스틱 용기들을 마주할때나 배달에 자주 사용되는 검정 플라스틱 용기에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접할때면 마음 한구석 불편함이 파고든다.

피곤하고 손가락 까딱하기 싫은 날 배달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이때는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한 김밥을 만들어 먹는다.

음식 재료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우면 요리가 훨씬 쉬워진다.

달걀을 부치고 집에 있는 멸치볶음만 넣고 말아도 맛있는 김밥이 된다.

멸치볶음도 없으면 계란 지단만 넣어도 된다. 배달 음식보다 훨씬 낫다.

뉴스에 먹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소식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그늘 속 이야기를 접하면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 마음이 더 멀어진다. 나와 가족이 함께 먹는 한 끼만큼은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는 소망이 싹튼다.

물론 외식이 집밥보다 간편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고 염려해 주는 마음이 집밥만큼 높을 수가 없다.

자극적인 조미료 사용도 지양하고, 신선한 자연 재료로 바로 조리해서 먹는 소박한 집밥이야말로 하루 중 내게, 그리고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건강이다.

밑반찬은 3개 이상에 국물 요리 1개, 메인 요리 1개라는 고정값을 내려놓자 집밥이 편안해진다.

방금 구운 생선구이에 바로 무친 나물 반찬 하나만 있어도 소박하지만 풍족한 한 끼가 되어준다. 국은 매일의 필수가 아닌 가끔 찾아오는 손님으로도 충분하다.

아무리 완벽한 집밥이라도 자주 해 먹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자주 가볍게 해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집밥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조용하고 단단하게 지지해 주는 동행이 된다.

오늘도 건강한 재료와 순한 조리로 방금 만든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간소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이 행위 만으로 우리의 걱정과 근심은 어느새 그 힘을 잃어버리곤 한다.

몸에 차곡차곡그날의 건강이 쌓여간다. 가볍고 소박한 집밥은 신체의 건강도 내면의 온기도 묵묵히 챙길 수 있는 단정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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