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하자 똑같은 질문들이 되돌아온다.
"강원도? 속초?"
"응 강원도 속초~"
"신랑 직장 강원도로 발령 난 거야?"
"아니 이직하려고"
블라블라 이직하게 된 이유를 길면서도 간단하게 설명하자 넘 멀리 간다~~ 라는 아쉬운 대답들이 들려온다.
'속초가 멀리 떨어져 있긴 하구나....'
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 도로만 안 막히면 수도권까지 차로 2시간~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여전히 '강원도'라는 세 글자는 수도권에서만 살아온 지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름인가 보다.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결심하고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다가왔다.
'속초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
신랑은 전기 연구원으로 경기도 회사에서 전기 제품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해왔다. 일반 사무직과 다르게 설계를 하고 만든 제품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될 때까지 남아서 끝마쳐야 했다. 거래업체와 출고 날짜는 잡혀있고 프로젝트 기간이 진행될수록 시간의 압박은 더 심해진다. 기계가 작동하게끔 계속 끊임없이 머리를 쓰고 돌려야 한다. 일주일에 대부분 늦게까지 야근이 일상이며 평일에 밀린 일들은 주말까지 데려가기 일수였다. 어느 날 밤에는 머리가 조여 오면서 아프다고 진통제까지 먹었다. 그때 신랑의 약을 넘기는 쓴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더는 그 쓴 표정과 약이 필요 없는 우리의 삶을 살고자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전부터 전기인 협회 모임에 다녀올 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건물 전기 관리직은 정말 수월하데~일도 간단하고~칼퇴근이고"
하지만 단점들도 많았다. 적은 월급에 탄력근무제로 교대근무를 해야 될 수 도, 주말에 근무하고 평일 휴무를 할 수도 있다는 것.
단점들 보다 '칼퇴근' '업무 스트레스 없음'만 보고 이직을 결정했다. 속초 1년 살기를 하면서 1년일해보고 정 힘들면 다시 돌아와도 되니까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속초로 이사를 하고 한 달 정도 있다가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 그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호텔 전기 관리직이어서 호텔경력자가 아니면 안 뽑아줄 거라는 낙담적인 예상과 달리 이전에 일했던 전기 연구원 경력만으로도 근무 가능하다며 채용한 것이다. 집도 가깝고 주 5일 9시~6시 칼퇴근이었다. 한 달 정도 더 쉬다가 출근하려고 해서 짧아진 휴가기간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녀보기로 했다.
다녀보니 속초 내에 전기 관리직 중에 연봉이 많이 작은 편이고 이래 저래 근무환경이 좋지 못했다. 좋지 않은 근무환경 때문에 상사분은 이직을 했고 몇 달 후 같은 직장에 좋은 전기 관리직 자리가 나왔다며 신랑에게 면접을 권했다. 그렇게 속초에서 취직한 지 6개월 만에 더 좋은 환경의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새로 옮긴 곳은 집에서 도보로 15분~20분, 차로 5분 거리에 주 5일 9~6 칼퇴근에 연봉도 더 높고 근무환경도 전보다 훨씬 좋은 곳이다.
'주말 근무, 교대 근무, 경력 무관하다고 적지않은 나이에 신입부터 시작하면 어떡하지?!'
'작은 월급으로 과연 세 식구 살아갈 수 있을까?'
등등 걱정만 하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우리 가족은 속초에서의 삶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해보자! 일단 부딪혀보자! 정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라고 마음먹고서 시작해보니 작은 시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가족을 속초의 안락한 둥지로 안내해주었다.
점심이 따로 제공되지 않고 직장과 집도 가깝기도 해서 특별한 일없으면 집에 와서 1시간 동안 점심을 함께 먹는다. 아침에는 둘째를 임신한 나를 위해 꼬맹이를 준비시켜 차로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고 출근한다. 저녁 6시 10분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 준비를 돕거나 저녁을 만들어준다. 식사가 끝나면 아이 목욕을 시켜준다. 저녁 루틴이 마무리되면 다 같이 아이와 책을 읽고 놀아준다. 함께 소소한 대화를 이어간다.
저녁이 있는 일상이 우리 가족의 삶에 자리 잡았다. 물질을 소비하는 대신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줄어든 월급이 허전할 줄 알았는데 그 빈자리를 여유로운 일상이 주는 충만함으로 채워가고 있다. 이 시간이 늘어갈수록 확실히 피부에 새겨진다.
'몇 백만 원의 돈이 부족해도 살 수 있지만 저녁이 없는 삶은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어'
물론 이제 곧 둘째도 태어나고,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육아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가 늘어날 것이다. 미래에 대비해여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작은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처음 연고도 없는 속초 맨땅에 다이빙했을 때처럼 작은 시작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인생을 풍족하게 채워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