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년만 속초에서 여행하듯 살아 볼까?

by 주하

불필요한 것들로 마음에 구름이 끼어 있지 않을 때, 이때가 바로 삶에서 가장 좋은 계절이다. -무몬 선사



작년 이맘때였다. 세상과 함께한 지 6개월 된 꼬맹이를 안고서 퇴근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언제 와?"

"미안, 오늘도 늦을 것 같아"

"빨리 와"

아이 저녁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나니 전화가 울린다.

"미안 1시간 더 해야 될 것 같아"

"빨리 와.... 나 힘들어..."


또래에 비해 다소 늦은 결혼이어서 미리 경험한 주변의 육아 선배들에게 자주 들어온 험난한 육아의 길, 미리 마음 무장을 단디 하며 맞이했다. 그럼에도 결혼 2년 만에 우리 품에 와준 천사 같은 아기는 이쁘게만 보이지 않았다. 친정, 시댁 둘 다 거리가 있기에 맘 편하게 맡길 곳도 없었다. 아침부터 신랑이 퇴근하고 집에 오기까지 오롯이 아기는 나의 책임이었다. 의지할 곳은 신랑의 퇴근밖에 없기에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 맞춰 그의 직장 바로 앞으로 이사했다. 걸어서 10분, 차로 5분. 출퇴근 시간은 길어봐야 하루에 20분이다. 이렇게 1시간 정도를 벌어들였음에도 힘들었다. 퇴근시간은 우리의 선택밖에 있었다.


결혼 전에는 신랑의 잦은 야근이 좋지는 않았지만 크게 문제 될 일도 없었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일을 이어갔지만 마음과 몸을 편히 관리하며 임신에 집중하고자 휴식기를 가졌다. 삼십몇년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신랑의 직장 근처 경기도로 이사 왔다. 일도 그만두고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알콩달콩 즐거운 시간이었다. 혼자 좋아하는 책을 보고, 배우고 싶은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가끔 멀리사는 친구들을 만나며 고립된 갈증을 달랬다. 속초에 살고 있는 지금 그때의 고립은 고립도 아니지만, 그때는 경기도가 처음이었기에 고향 서울에서 멀게 떨어진 느낌이었다.





알콩달콩했던 신혼의 전화 속 대화는 아이가 태어나고 변해갔다. 서로의 안부를 물을새 없이 오로지 그놈, '퇴근 시간'이라는 녀석만 생명줄 인양 찾아댔다. 그런 내게 신랑은 항상 미안해야 했다. 아침에 밝았던 우리의 공기는 저녁이 되면 주의 대부분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그놈이 다가올수록 천사 같이 사랑스러운 아기도 안 예뻐지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쌓아온 온화한 엄마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작은 아이의 투정에도 짜증 섞인 눈빛으로 마주한다. 우는지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편할 것 같은데 아이는 알길 없이 크게 더 크게 울어댄다. 말 못 하는 아기에게 그만 울라고 소리를 지르고, " 엄마도 힘들어"하며 아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산후우울증 문턱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밤이었다. 장소 불문하고 어디서든 3초 만에 숙면에 진입하는 놀라운 장점을 가진 그가 1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뒤척이기만 하고 잠을 자지 못했다.

"왜 잠이 안 와? 소화가 안돼?"

"아니...."

"근데 왜 그래?"

"내일 일이 걱정이 돼서..."


아이가 태어나는 해에 차장으로 진급했다. 2년간 기다린 귀한 생명과 신랑의 승진이 함께였기에 기쁨도 훨씬 크게 다가왔다. 즐거움도 잠시, 늘어난 월급만큼 그의 어깨에 내린 책임도 몇 배로 늘어갔다. 매일 간절한 목소리로 "언제 와"를 외치는 아내를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해서 일을 빨리 끝낼 수 록 '퇴근 시간'이 앞 땅겨지는 대신, 회사는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더 던져주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장과 신랑의 중간 역할을 해주던 중간관리자도 퇴사를 하고, 모두가 함께 일하기 꺼려하는 독불장군과의 독대가 펼쳐졌다. 그 기한까지 프로젝트 완성은 무리라고 의견을 제시해도 모세의 기적 같은"안되면 되게 하라"만돌아올 뿐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가오는 마감기한에 그의 한숨은 늘어만 갔다. 잠 못 드는 밤이 하루 이틀 쌓여만 가고 그의 얼굴빛도 깜깜한 터널 속처럼 어두워져 갔다. 10년을 묵혀온 꿈이라는 단어 '퇴사'가 토스트기에서 너무 오래 굳어진 빵처럼 툭 하고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딱딱하게 그을린 빵을 '가장'이라는 축 처진 어깨로 토스트기에 도로 집어넣으며 애써 짓는 쓴 미소를 보고 있으니 나의 가슴에도 탄 향의 쓴맛이 가득 베어 들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워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오빠, 퇴사해. 퇴사해도 괜찮아"

"튼튼이는 어쩌고?"

"몇 달 쉬고 또 직장 구하면 되지"

"그렇지 몇 달 쉬고 구하면 되겠지"

"오빠 11년간 한 번도 안 쉬고 일했잖아~당분간 푹 쉬면서 앞으로일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래...... 우리 이사 갈까?"

"어디로?"

"강원도 산골이나 시골 어때? 농사짓고 사는 거지~"

"난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아"

"그럼 속초 어때? 속초 여행 가는 거 좋아하잖아~"

"속초? 속초라~ 속초에서 살면 좋겠다. 좋아하는 바다, 호수, 산도 자주 볼 수 있고~괜찮은데?!"


며칠의 대화가 오가고 그는 11년 다닌 첫 직장을 퇴사했다. 10년간 꿈꾸었던 '퇴사'를 손에 쥐고 돌아온 그의 첫마디는 "그동안 노예로 살았던 기분이야". 우리는 노예였다. 저녁시간을 쥐며 우리 세 식구 보통의 일상을 마구 흔들던 '퇴근 시간'의 노예였다. 처음에는 겁이 났다. '그놈'의 울타리 밖에서 잃게 될 안락함의 부재가 두려웠다. 감히 '그놈'에게서 벗어난다는 결심은 못하고 미워하기만 했다.'어쩔 수 없다'는 푸념과 함께. 울타리 밖 세상으로 처음 발을 내딛자 생각보다 그 걸음은 가벼웠다. '왜 이제야' 말과 함께 오히려 아쉬워했다.



우리를 폭풍 속으로 휘몰아 넣던 '그놈'과 이별하자, 잿빛 가득한 그의 얼굴에서 5월의 싱그러움이 피기 시작했다. 아이를 오래도록 봐주는 든든한 조력자의 탄생으로 나의 인생에도 우리 가족 모두의 인생에도 삶에서 가장 좋은 계절이 시작되었다. 끼인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마음으로 푹 쉬며 지친 마음에 봄을 채워갔다. 쉬기로 한 3달이 거의 지나갈무렵 새로운 선택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전에 하던 전기 엔지니어는 더 이상 하기 싫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졌어"

"무슨 일?"

"전기 안전관리자, 전기인 협회 모임 갈 때마다 만나는데 전기 안전관리자로 일하는 분들 말이 스트레스 없이 참 편하데, 칼퇴근이고~하지만 월급이 적어"

스트레스 없음, 칼퇴근 이 두 가지만을 보고 새로운 문으로 들어섰다. 이미 높은 퇴사의 벽을 넘어서인지 가벼운 월급봉투는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적게 버는 만큼 물질을 적게 소비하고 늘어난 시간을 여유롭게 소유하자고 마음먹었다. 강릉에서 2주, 속초에서 2주씩 한 달을 살아보고 장소를 정해 보기로 했다. 마음속에 속초를 담아두었지만 갑자기 도시적 편의를 갖춘 강릉도 궁금해져서다. 강릉에서 2주를 보내고 집에서 며칠 쉬다 다시 속초로 내려갔다. 속초에서 1주일 살아보고 마음이 정해졌다. 역시 두 군데 다 살아보니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결혼하고 신혼 때 속초로 1박, 2박씩 여행을 즐겼다. 강릉, 속초 각각 살아보니 그동안 왜 속초에 그렇게 끌렸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다와 호수 산이 가깝게 둘러 쌓인 속초는 자연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편의시설도 많이 없고, 시골 느낌도 나지만, 탁 트인 거대한 세계가 선사하는 포근한 여유로움이 속초와 함께 한다.

호수길 따라 걷기, 호수 벤치에 앉아 멍 때리기, 바닷가 파도 소리 들으며 걷기, 날아가는 새들 사진으로 기억하기, 어디서든 잘 보이는 든든한 병풍 설악산 눈에 담기, 가까운 하늘 보며 기억 속 호주 꺼내 추억하기.....

이 곳에만 오면 많이 달리던 도로 위의 자동차 따라 바삐 움직이던 마음도 깊은 바다와 잔잔한 호수, 푸른 산의 속도를 닮아간다.

지역맘 카페에 올라온 먼저 살아본 경험자들의 "아이 키우기는 불편해요"라는 충고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지만, 속초의 여유로움에 뺏긴 마음을 끝내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9월의 속초는 삶으로 들어왔고 우리 마음처럼 청명한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이해될 것 같은 곳


천천히 움직여도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곳


소소한 것만으로도 풍성할 것 같은 곳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곳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서고 떠나지 말아야할 이유들만 늘어갔다. 1년동안 여행하듯 살아볼까?로 마음을 바꾸니 편해졌다.

어느덧 속초의 가을,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 했으며 여름을 기대하고 있다. 소유하는 계절이 늘어갈 수 록 기억의 서랍 속 쌓여가는 추억 조각들이 늘어만 간다. 그 조각들을 서랍 속에서 꺼내어 브런치에 하나하나 옮겨 소중히 간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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