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일이다. 하교하고 집에 왔는데 집에 엄마가 없었다. 이때 마침 아버지도 일찍 왔고 우리 둘 다 열쇠가 없었다. 아버지 차 안에서 둘이 엄마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처음으로 집 밖의 공간에서 아버지와 둘이 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차 안의 공기는 어색하고 차가웠다. 나는 그때 어린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물었다.
"아빠는 날 왜 싫어해요?"
"아빠가 왜 널 싫어하니, 아빠는 너 안 싫어해"
아빠가 날 싫어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대답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더 대화는 이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에 대해, 서로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들을 채울 수 있었다. 조금 뒤 엄마가 돌아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매일 바빴고 함께하는 시간은 적었다. 좁혀졌던 거리는 다시금 예전대로 멀어져 갔다.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던 정취는 따뜻함보다는 온기가 없는 공기, 좋아한다 보다는 싫어한다였다. 항상 일 때문에 바빴고 집에 늦게 오면 쉬기에 바빴다. 아버지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시간이 갈 수 록 내가 자랄수록 더 벌어지기만 하고 오해와 원망만 쌓여갔다. 난 언제나 아버지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아버지가 나도 미웠고 불편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서 아버지가 아프셨다. 어느 날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하셨어요?"
"아빠가 왜 널 싫어하니, 아빠는 너 안 싫어해, 널 사랑한단다"
그때 아버지에게서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걸, 나를 마음속으로는 사랑하셨다는 걸, 단지 표현할 방법을 모르셨고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나는 30년간의 쌓였던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얼마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 서로에 대해 오해를 풀고 마음을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아프셨고 시간은 없었다.
뱃속에서 10달을 꼬물거리던 생명이 세상에 나와 우리 부부 곁으로 오던 날, 우리 세명은 가족이 되었다. 엄마, 아빠, 딸. 가족의 끈으로 묶여졌다. 누워만 지내던 신생아는 봄의 새싹처럼 생명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하루하루 자라 갔다. 초점도 잘 안 맞던 두 눈이 세상을 바로 보기 시작하고 눈 앞의 세상 모든 것인 엄마 아빠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나의 몸의 일부분인 것 같은 작은 생명 덩어리가 엄마 아빠를 보며 처음으로 웃어준다. 자기 힘으로 뒤집기를 시작하고 걷기 위해 기기를 시작한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놀랍고 빨리 흘러간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서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그때 이해가 안 가고 원망스럽던 부분들이 지금 돌이켜 보니 이해가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는 삼 남매를 먹어 살려야 하는 가장의 무게를 지고 매일 돈을 벌어야 했고, 치열하게 일해야 했다. 늦게 집에 오면 피곤해서 쉬기 바빴고 무뚝뚝한 그는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우리 삼 남매와 가까워지는 길 밖에 혼자 서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어깨와 외롭게 홀로 서있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지금의 나라면 먼저 다가가서 말도 자주 걸고 대화도 나눌 텐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기에 무뚝뚝하고 무섭더라도 먼저 다가가 웃으며 말 걸었을 텐데....
'더라면'의 꼬리를 붙잡고 생각해본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차 안에서 있었던 1~2시간의 시간이 자주 우리에게 있었더라면, 우리 가족에게 있었더라면.......
우린 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와 조금은 더 알게 되고, 편해지고 따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삶은 행복했을까? 물어본 적 없었지만 그 답을 알 것만 같다. 나의 유년시절도 밝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따스하다고 말할 추억 한 조각도 꺼내올 수 없다.
그 뒤로 생각해보았다.
가족 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삶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딸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을 이 순간들을 어떻게 채워갈까?
어떻게 보내야 딸이 유년시절을 돌아볼 때 따스하다고 느낄 수 있는 추억 조각들이 제법 있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리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아버지의 삶이 우리 가족의 삶에 질문을 건넨다. 질문들에 대답들이 쌓여가면서 신랑은 11년 다닌 첫 직장을 퇴사했다. 신랑이 "퇴사하고 싶어"라고 말한 건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다. 그때가 직장 8년 차로 과장이었다. 야근이 길어지거나, 보스가 모세의 기적을 바라며 푸시할 때, 프로젝트가 쉴 틈 없이 늘어만 갈 때 그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럴 때면 나는" 퇴사해"라고 대답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준비가 있었나 보다. "퇴사해"라고 대답하면서 나도 그의 퇴사에 마음을 대비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그는 진짜 퇴사를 했다. 그가 던진 10년을 케케 묵혀온 묵은지 같은 '퇴사'에 가장 반기를 든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회사의 보스였다. 한동안 푹 쉬겠다고 말한 신랑에게 6개월만 쉬고 돌아오라고 했다. 앞으로 이일을 계속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자 그런 거면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며 언제든 열려있다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라고 했다.
언제든 열려있으니 돌아오라는 그 말이 11년의 빈자리를 조금은 위로해주는 듯했다. 드디어 자유의 첫날이 왔다. 신랑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