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자유가 보였다

by 주하


11년간 일해온 첫직장을 퇴사했다. 신랑에게 물었다.

"자유의 첫날인데 기분이 어때?"

"3달은 쉬어봐야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애, 아직은 그냥 연차 쓰는 것 같애"


아침 7시 20분쯤이면 출근하고 잦은 야근으로 늦게 집에 돌아오던 그가 아침부터 함께했다. 그의 말처럼 2주 정도는 연차 쓰는 기분이었다. 튼튼이 출산할 때 10년 근속 연차 2주를 썼었다.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종일 오래 보냈던 시간 '2주'가 지나자 그의 퇴사가 현실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튼튼아 5분만 더 잘께"퉁퉁 부은 눈으로 아기에게 말하며 포근한 이불속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던 엄마 대신 에너지 가득한 아빠가 웃으며 아이의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잠 많은 엄마에게 꿀 같은 아침의 여유가 부여되었고 종일 엄마 아빠 모두 함께 하기 시작한 튼튼이의 웃음소리가 더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단 아이의 웃음뿐은 아니었다. 육아의 쉼터가 신랑의 퇴근시간이 유일했기에, 그는 야근 후에 집에 와서도 피곤한 몸으로 육아의 바톤을 이어받아야 했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무뎌갔고 언제 찔릴지 모르는 바늘이 돋아나 있었다. 퇴근시간에서 해방되자 6개의 눈동자 속에 싱그러운 봄이 찾아왔다. 사소한 것에도 내뱉던 짜증들 대신 소소한 것에도 즐거운 웃음이 삶을 드리웠다.


종종 가던 대형 쇼핑몰들과 가게들의 평일 휴점일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평일 낮의 주차장은 넓었고 자주 막히던 도로 위도 한산했다. 사람 많고 붐비는 주말은 우리에게 집에서 머무르며 푹 쉬는 요일이 되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살아가는 삶도 이렇게 여유롭겠지?!'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우리는 11년간 신랑이 쌓아온 퇴직금으로 한시적인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속초로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천천히 달려?"

"창밖 풍경 보면서 가려고"

110km로 달리던 속도는 80~90km로 느려졌다.

"초록 산들 좀 봐~풍경 참 멋지다"

"응~참 이쁘다~근데 오빠 입에서 풍경을 감탄하는 말 처음 들어보네"

"그런가?"

"응, 여기는 강원도 올 때마다 자주 지나쳤던 길이잖아, 이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오나 보다"


신혼여행 때 처음 본 와이키키 해변을 볼 때도 해외의 에매랄드 빛 같은 청간해변을 볼 때도 감탄하던 나에게 그는 "부산 해운대랑 똑같네 뭐" 라며 고향바다 이름을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홍콩에 처음 가서 유명한 맛집의 딤섬을 먹고 감탄할 때도 그는 "한국 공항 푸드코트에서 먹었던 거랑 맛 비슷하구만"라고 했다. 감성과 거리가 먼 공대생인 그는 '감탄'과도 멀리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를 만나 알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놀란 나는 그의 옆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자유가 보였다. 11년 옭아매던 끈을 풀고 느슨하고 부드럽게 쉬는 호흡이 느껴졌다. 추월하고 빨리 달려야 하는 1차선에서 천천히 여유롭게 2차선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회색빛 세상이 투명하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도로 위의 속도는 삶의 전반으로 퍼져갔다. 3달간의 쉼은 우리 가족의 삶에 '자유'를 심어주기 충분했고 도로에서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2차선을 선택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속도로 창밖의 풍경을 즐기며 생생한 세상을 살아가 보기로 했다.


3달이 지나고 속초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주변에 소식을 전했다.

"갑자기 왜? 강원도라고? 신랑 직장은?"

지인들에게 강원도는 멀게 다가왔고 아빠들에게는 부럽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반대가 심할 것 같던 양가 부모님들은 의외로 따스한 응원을 해주셨다. 그동안 신랑이 야근으로 항상 힘들게 일해온걸 잘 알고 있는 터라 여유로운 삶을 찾아가는 우리를 이해해주셨다.

가득했던 걱정들은 걱정일 뿐이었다. 작은 용기로 걸음들을 옮기기 시작하자 신기루처럼 사라져 갔다.

그렇게 속초는 우리 가족의 삶으로 들어왔다. 속초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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