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보다 더 내가 되고

by 주하

6년 만에 매트리스 청소를 받았다. 홈케어 닥터가 방문했다. 40분이 지나고 총 6개의 필터를 전했다. 현미경으로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진단을 내렸다. 1000배 확대된 세상에는 먼지 진드기, 각질, 미세먼지 등이 쌓여있었다. 두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처럼 외면하고 싶었다. 매트리스는 타인이 아니었다. 365일 가족의 등을 맡겨온 또 다른 가족이었다. 계속 그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더디게 흐른 시간이 끝나고 진단이 내려졌다.

"매트리스가 폭삭 삭았습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케어를 계속 받아도 희망이 없는 건가요?"

"네. 없습니다. 받으신다면 돈만 저희 회사에 뿌리시는 겁니다. 새로 교체하셔야 합니다."


6년 전 신혼 가구로 우리 곁에 왔다. 함께한 신혼 살림 중에 가장 고가였다. 잠만큼은 편하게 푹 쉬고 싶은 마음에 아깝지가 않았다. 분명 10년은 사용할 수 있다고 구입 시 들었는데. 그 수명의 반이 뚝 잘렸다.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가족의 죽음이었다. 식탁 위에 팜플렛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매트리스 렌탈 가격이 적혀있었다. 그 종이 한 장이 판사가 내리치는 법정의 망치처럼 탕탕탕 죽음을 외치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자가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아주 젊었고 상대방은 내게 중년으로 보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딴 건 몰라도 몹시 놀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와 나(화자)의 대화이다.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안락하고 평온한 증권거래소의 직업과 가족들을 버린다. 6펜스의 세계, 물질 세상에서 달, 영혼을 위한 예술 세계로 떠난다. 마음속 자리 잡고 있던 예술을 창조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마치 순례자 같은 길로 접어든다.

하루아침에 아무 이야기 없이, 대처 없이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그의 이기심을 마주 했을 때 처음에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렸을 적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6펜스란 명목으로 아버지에게 묵살당했다. 꿈은 뒤로하고 안정적인 삶의 길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도 그림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안정이라는 편의가 꿈을 덮을 수 있을 줄 믿었으리라. 외면했던 마음을 보고 볼수록 잔재하고 있는 꿈의 조각들, 욕망의 파편들이 보였으리라. 스트릭랜드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이해되어갔다. 황망한 이기심은 순수한 열정으로 재해석되어갔다.


'나는 과연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겉보기와 다르게 마음속에 다른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단어들은 없는 걸까?' 스트릭랜드의 영혼까지 사로잡은 달의 세계가 물어왔다.




작년까지 차로 1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다녔다. 올해 단지 내 어린이집이 생기면서 옮겼다. 한두 달은 차도 안타도 되고 바로 앞이라 편하고 좋았다. 오며 가며 인사하는 꼬맹이 친구들도 늘어서 좋았다. 세 달쯤 되자 생각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친구들 엄마와의 관계이다. 요즘 놀이터에 가면 미취학 아이들 곁에는 거의 다 보호자가 동반한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논다는 것은 엄마들끼리 만남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친해질수록 무리가 생겨났다. 마음속 갈등도 자라났다.

'저 무리에 들어가야 하나?'

20년 지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이다. 이미 다 겪어본 그에게 물었다. 무리에 들어가면 단톡방도 들어가야 하고, 한번 발을 들이면 웬만해서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새동네로 옮겨 그 모임에서 자연스레 나올 수 있었다고. 엄마들 모두 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런 모임 자체가 힘들고 자기와 맞지 않았다고. 지금은 친한 엄마 한 두명만 연락한다고.

몇년간의 고백을 듣고 있는 내내 동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화 끝에 나도 같아. 내 마음도 딱 그래. 이 말을 듣자 친구는 말했다. 넌 안 그런 줄 알았어. 사람들 만나는 거, 모임 갖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 조차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성격 테스트나 나를 소개하는 빈칸에는 활발함,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함이 쭉 함께였었는데.


2년 전 경기도에서 속초로 이사 오면서 자연스레 지인들과의 만남이 줄었다. 코로나 시작 시기와 맞물리면서 더 어려워졌다. 연고라고는 여행으로 자주 만나왔던 동해 바다와 설악산, 청초 호수가 다였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나, 우리가 전부였다. 아빠가 출근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혼자였다. 책을 읽고 글을 끄적였다. 허전해질 때면 창밖의 바다가, 낮은 구름이, 부유하는 여유가 채워줬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쌓아가기보다 마음과의 대화가 쌓여갔다. 책을 읽으면 책이 질문을 던졌고, 나는 또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내면 속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나와 더 가까워 갔다.

여럿이서 자주 모이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적게 모여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는 걸 좋아한다.

외로움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사람들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처 받기 싫은 나의 보호막이다.

아이의 울음에 유독 힘들어하는 건 어린 내가 흘린 눈물의 쓰라림 때문이다.

타인을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초의 느린 시간은 마음에 현미경을 띄었다. 그동안 그런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었는데. 1000배 확대된 필터 속에는 나도 모르던 내가 있었다. 찰리 채플린이 이야기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인생은 희극만 존재한다면 완벽하지 않다. 비극이 있기에, 참담한 슬픔이 있기에 오늘의 기쁨이 더 빛나는 것이다. 비극을 받아들이자 쓴 파도가 마음을 훑고 간다. 잠잠해진 바다가 나를 감싸온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내가 되고, 생은 더 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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