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지만 필요없는 것들

150만원으로 주문한 자유

by 주하

남편이 회사를 퇴사했다. 결혼하고 맞이하는 두 번째 퇴사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고 회사는 주지 않았다. 육아휴직의 벽은 높았고 넘을 수 없다면 부숴버리기로 했다. 둘째 꼬맹이가 돌이 되는 6개월 동안 돈보다 시간을 먹고살기로 했다. 처음 그가 11년 된 직장을 그만 둘 때는 세상도 크게 변할 줄 알았다. 마음을 졸였던 게 민망할 만큼 바깥세상은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우리 내면의 세상이었다. 원하는 것을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자리 잡았다. 시간이 주는 감미로운 여백에 취하게 되었다. 물질에 묶여있던 마음은 더 자유로이 시간으로 기울었다.

딱 하나 바뀐 바깥세상이 있었다. 따박따박 들어왔던 월급의 부재이다. 매달 25일 들어왔던 입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가계 경제의 위기이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 공급이 끊기는 것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끊긴다. 수요에 맞추어 공급량이 늘어나지 않는다. 수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암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통 없이 가계를 잘 꾸려가기 위해 계획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들 중의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향상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사치품과 편의 품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월든 호숫가에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 걸쳐 시도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이야기다. 그는 숲 속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며 사회적 공급이 중단되었다. 스스로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간소하고 자연과 어우르는 방식으로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냈다. 그렇게 본질에 가까워져 갔다. 우리 가족도 대도시를 떠나 바다 근처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 2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6개월간의 생계를 위해 소로우처럼 농사를 짓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기존의 자원 활용과 자발적 빈곤 두 가지이다.


첫째 퇴직금을 쓴다. 모아둔 돈으로 공급한다.

둘째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한다. 꼭 필요한 것에만 소비한다.


첫 번째 방법으로 한 달에 150만 원을 책정했다. 6개월간 4인 가족이 1000만 원으로 생활하기로 했다. 1000만 원은 퇴직금 + 모아둔 돈으로 공급한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소비를 줄인다. 2년 전 속초로 이사 오면서 기존 월급의 반토막이 되었다. 줄어든 월급은 시간과 교환되었다. 가벼워진 지갑 대신 평일의 삶이 시작되었다. 일상의 저녁이 우리 집 문으로 들어왔다. 이 달콤함을 위해 기꺼이 지출을 줄였다. 물질에 대한 마음을 줄이고 시간을 즐겼다. 이미 반이나 줄어든 생활비에서 더 비울 것이 없을 줄 알았다. 눈을 크게 뜨고 관찰했다. 그중에는 필요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냉장고에 쟁여둔 커피캔. 편의점에서 하나씩 사면 2000원 정도인데 20개씩 사면 15000원이다. 하나에 750원. 1300원 정도가 싸다고 돈 버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커피와 얼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올 때도 텀블러에 얼음 동동 띄어 담아온다. 직접 만들어서인지 얼음이 들어가서인지 더 맛있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둘째의 탄생으로 육아가 벅찰 때 첫째에게 가끔씩 보여주기 위해 신청했던 서비스. 이제는 공동 양육자가 있기에 유튜브의 광고쯤은 거뜬하다. 유튜브 자체와도 멀어지고 있다.


신용카드를 잘랐다. 신혼초부터 돈을 모은다고 신용카드를 쓰지 않았다. 1년전 정수기를 렌탈하면서 15000원 상당의 할인을 받기위해 다시 신용카드를 사용해왔다. 30만원 이상의 전월 실적이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30만원을 맞춰서 카드를 쓰려고 했다. 항상 생각한것보다 명세서에는 더 큰 금액이 찍혀있었다. 15000원 할인 받아보려다가 더 많은 소비로 돈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연회비와 함께 말이다. 카드를 잘랐고 렌탈값은 할인 받지 않는다. 필요로 했던 30만원의 지출도 멈추었다.




애가 이걸 3~4개 먹는지라 쟁이다 보니

일반 냉장고에서 김치냉장고까지 터지게 있어요.

한 400개 있는 것 같아요. 더 있을지도 몰라요.

핫딜 뜨면 저도 모르게 사요.


한창 핫딜에 빠져있을 때 본 글이다. 글을 보고 공감되어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아차 싶었다. 이토록 핫딜이 무서운 거였구나. 둘째를 막 출산하고 아이 둘 세상에서 현실 육아에 허우적거렸다. 나라는 존재는 안드로매다 어디쯤 사라지고 아이들 엄마만의 시간. 육아 퇴근하고 밤이 되면 남아있는 신체는 손가락뿐이었다. 어두운 침대에 누워 핫딜을 무섭게 탐닉했다. 하나라도 싸게 사면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문한 날이면 경제에 보탬이 되는 행동을 했다며 뿌듯해했다. 어느 날 냉동실에 문을 여는데 우르르하고 떨어졌다. 여백이 있던 냉장고가 점점 포화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가 폭발하는 상상이 되었다. 냉장고를 지키기 위해 핫딜을 끊었다.


마법의 질문을 던진다. 지금 꼭 필요한 것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나? 이 두 질문만으로 신기하게 결제버튼을 누르지 않게 되었다. 부재로 인해 생계에 지장을 주는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다.


핸드폰 어플들을 지웠다. 속초로 이사 오고부터 온라인 생활에 더 가까워졌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없기에 옷이나 생활용품 전반적인 것들을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해왔다. 현실 세상의 가게가 줄어든 만큼 핸드폰의 어플들은 늘어갔다. 특히 쇼핑몰들에서 어플을 깔면 적립금이나 할인쿠폰을 제공한다. 혜택을 받기 위해 어플을 깔다 보니 어느덧 한가득이다. 쇼핑몰들이 돈을 뿌려가며 어플을 깔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플은 핸드폰 상의 가상 가게와 같다. 다른 곳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소비자를 빨아들일 수 있는 통로이다. 어플을 터치하면 물건들이 반짝거린다.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지 않은 지출은 이어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몇 개 빼고 싹 지웠다. 핸드폰 구입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는 여백이다. 어플들이 사라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구입해야 한다는 소리 없는 강요가 꺼지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커피숍보다 도서관을 간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커피숍에 즐겨 갔다. 바닷가 마을에 살게 되면서 차로 5분~10분만 가도 아름다운 호수나 바다 산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다. 첫째만 있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고 자유시간에 카페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가면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간단한 점심을 때웠다. 11000원 정도 비용과 왔다 갔다 기름값이 든다. 13000원 정도의 비용이다. 육아 퇴사가 시작되고부터 단지 내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 아파트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시설도 좋고 에어컨도 잘 나온다. 사람도 적어서 조용하고 깨끗하다. 점심때는 바로 앞의 집으로 가서 신랑과 집밥을 해 먹는다. 단지 도서관이 지겨우면 도보 10분 거리 속초 시립도서관으로 가면 된다. 무료로 이용할 곳은 생각보다 곁에 많이 있다.




머리를 하고 온 날이면 사람들의 머리스타일만 보인다. 운동화를 사면 땅 위 걸어 다니는 운동화만 눈에 들어온다. 필요 있는 것들을 찾다 보니 필요 없는 것들이 발견되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없어도 큰 지장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쌓여있는 걸까. 문득 떠올랐다. 빈자리를 보아야 그 존재의 가치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없어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있고, 없으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있다. 없으면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에 둘러싸여, 그리움 까진 아니더라도 생각나고 또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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