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첫날 생기는 일

by 주하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날, 그의 자유도 시작되었다. 수도권처럼 30도가 넘지는 않지만 선선했던 공기는 텁텁하게 데워졌다. 2주 전 5개월이 막 지난 꼬맹이에게 새로운 놀거리를 주고자 장난감을 대여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속초 시립도서관이 있다. 이곳에 있는 장난감 나라에서는 속초시민에게 무료로 장난감을 대여해 준다. 2주간 빌릴 수 있고 연장은 되지 않는다. 이마트에서 후원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종류도 많고 상태도 좋고 깨끗한 편이다. 6개월간의 자유생활을 위해 경제 다이어트에 들어간 우리에게 반가운 곳이다. 그동안 첫째 장난감을 종종 빌려왔다. 다 작은 크기의 것들이었다. 대형을 빌리고 2주 만에 반납, 또 대여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기에 피해 온 것이다. 앞으로 누릴 시간적 여유로 인해 관대해진 마음은 가볍게 무거운 것을 들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를 제외하고 나에게만 해당되었다.


신랑은 분해한 점퍼루를 들고 나는 꼬맹이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장난감 코너가 어째 빛이 어둡다. 밖이 밝아서 어두워 보이는 건가? 애써 외면하며 걸어갔다. 열체크와 방명록을 쓰고 들어가 보니 문이 닫혀있었다. 그제야 운영시간을 보니 오후 1시.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기다릴래야 사이가 먼 시간이었다.



후... 하고 열기 섞인 탄성이 밖으로 나왔다. 땀을 닦고 차에서 에어컨 바람을 기다리는데 2년 전 오늘이 떠올랐다. 11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둔 그, 함께 맞이하는 퇴사 첫날, 세 식구는 집을 나섰다. 가벼운 마음을 누리고자 자주 갔던 경기도의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 차 안에서 한산한 평일 식당가를 상상하며 점심메뉴가 한참 오고 갔다. 군침을 삼키며 가까워진 건물을 바라보는데 낫 빛이 휑했다. 휴무일이었다. 안돼 하고 부정해 보아도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왔던 이곳의 휴무일을 몰랐을까. 답은 간단했다. 평일에 와본 적이 없으니까. 주말에만 즐겨 찾았으니까. 휴무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평일에는 거의 매일 야근이 반복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9~10시, 어쩌다 일찍 오면 7시. 그것도 가족과의 시간을 늘려보려고 회사 바로 앞으로 이사 온 덕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는 일에 찌들어 있었고 나는 육아에 지쳐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를 안는 그를 보면 안쓰러웠지만 못 본 척했다. 종일 혼자 아이와 씨름으로 우울증 코앞에 있었던 나였기에. 아니 안에 발을 들였었는지도 모른다. 매일이 아슬아슬했고 편히 숨 쉴 공기가 부족했다. 출근 안 하는 주말 토요일 아침이 오면, 그 결핍을 허겁지겁 채우려고 밖으로 나갔다. 잃어버린 평일 저녁 삶을 주말이라는 부록으로 어떻게든 충당해보려는 발버둥이였는지 모른다. 외출을 하고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해가 저물고 월요일이 다가올 때면 반짝 빛나던 마음에 다시 회색 덩어리가 피어났다.


목적지의 부재를 뒤로 하고 달리는 도로 위에는 빈 공간이 가득하다. 가득 메웠던 차와 사람들 그 위에 상념들까지 사라지고 비로소 편안한 위안이 자리한다. 그렇게 평일의 삶으로 들어간다. 그곳엔 자유가 있고 휴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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