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보다는 기저귀

by 주하

"언니~집들이 선물로 벽시계 사갈까 하는데 어때?"

"집에 시계가 있어서~"

"최신 디지털시계야. 날짜랑 온습도도 다 나와~. 은아도 보더니 이사 가면 이걸로 하고 싶다고 했어."

"음~그래? 어떤 모양인데?"

"그럼 사진 보내줄 테니까 한번 보고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 사진을 보았다. 최신 디자인이며 심플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시계가 참 괜찮아 보였다. 사진을 보고 거실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몇 년 전에 집들이 선물로 받았던 시계. 동그란 은색 테두리에 심플하고 큰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두 개의 시곗바늘이 보였다. 똑딱똑딱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소리와 함께 아날로그 감성이 그윽한 녀석이다.

'최신 시계가 나에게 정말 필요할까?'

짧은 시간 머리를 굴려보았다.


최신 시계 장점: 시계를 계산할 필요 없이 시간 분이 바로 보여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날짜와 온도 습도까지 한 번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세련되어 인테리어 효과를 줄 수 있다.

단점: 선을 매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벽시계가 두 개가 되므로 기존의 시계를 처분해야 한다.


아날로그시계 장점: 선을 매립할 필요가 없다. 물건을 처분할 필요 없이 그대로 사용 가능하다. 내가 선호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전해준다. 보다 따스한 느낌이 있다.

단점: 건전지를 갈아 줘야 한다. 오래 사용했다.


선을 매립하고 벽시계를 처분해야 하는 것보다 일 년에 한 번씩 건전지를 갈아주는 것이 훨씬 간단해 보였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계를 계속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래~그러면 언니 필요한 거 있어? 이왕이면 필요한 거로 주는게 좋을 것 같아서"

"음~~ 기저귀가 필요하긴 해"

"그래? 알겠어~~ 기저귀 주문할게"

"하 00 네 00 썸 0 3단계로 부탁해"

"그래~아주 확실하다니까~확실해!"


전화를 끊는데 동생의 '확실해'라는 단어가 몸 위로 두둥 떠다니며 나를 계속 간질였다.



속초로 이사 오기 2년 전 경기도에 사는 나였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긴 했지만, 동생집에도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똑같은 예쁜 벽시계를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은 아이템을 공유하는 것도 기쁨의 한 종류이니까.

그렇다면 속초에 살게 되면서 그동안 나에게 무엇이 변한 걸까?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저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인식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말을 바꿔보면 나에게 소중한 것을 인식할 때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다가 된다. 소중한 것을 인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쓸모없는 것들과 최대한 멀어져서 딱 본질에만 충실하게 지내야 한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백화점도 없고 대형 쇼핑몰도 없어서 주말이면 바다, 호수, 산, 숲으로 가며 시간을 보냈다. 넘쳐나는 야근의 시대가 끝나고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되며 외식도 차츰 줄어들고 직접 만드는 집밥이 함께한다. 거실을 차지했던 tv 소리가 사라지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대화가 들려온다. 공간을 내주었던 물건들보다 여백이 전해오는 편안함이 눈에 들어온다. 물질을 지향하는 돈보다 여유를 선사해주는 시간이 가치롭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체화하면서 더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다. 더 내가 되고 있다. 더 우리가 되고 있다.


동생은 로켓 배송으로 기저귀 두 박스를 보내주었다. 팬트리에 가득 쌓인 기저귀를 보며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2년간 속초에서의 시간이 선물한 기저귀가 더 소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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