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시간을 먹고살기로 했다

육아퇴사 이야기

by 주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에리카 라인



오늘 주말이 아닌 목요일이다. 신랑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소이야~엄마는 아빠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편하단다."

점심으로 집밥을 먹으며 그가 건네 온 말이다.

공동 양육자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다급한 석탄이 가득한 마음에 단비가 내려 차분해진 것처럼 여유가 서려온다.

그동안 나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올초 1월 둘째가 태어났고 어느덧 6개월을 향해가고 있다. 어느 정도 회복되면 조리원에서 글을 쓰겠다고, 멀지 않게 돌아오겠다고, 노트북도 챙겨간다고 블로그에 인사말을 남겼었다. 그 회복은 기대보다 더디게 다가왔고, 몰아치는 둘째라는 새로운 환경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바빴다.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수술 통증이 어느덧 잊혀질 무렵, 시작된 현실 육아.


아이 하나는 우아한 세계였다. 아이 둘은 일 더하기 일이 아니었다. 일 곱하기 무한대의 느낌이랄까. 첫째를 돌보면 둘째가 기다리고 있고, 둘째를 안아주면 첫째도 안아달라고 울먹이고 있다. 더 아기가 되버린 큰아기가 버거웠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서 생기는 자유시간에는 잠을 자기에 급급했다. 뜨거운 사막에서 길을 잃은 이가 신기루를 발견하여 허겁지겁 모래를 마시는 것처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여기에 좋아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불만족까지 더해져 의욕을 잃어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단것을 자주 먹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생기 잃은 코끼리 한 명이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육퇴를 하고 지친 몸을 끌고서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이주 정도는 운동을 하고 나면 옷이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다. 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았었는데...몸이 흘려내는 눈물 같았다. 그동안 잘 돌보지 않아 서글펐던 몸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우울감이 함축되어 땀으로 분출되었다. 내면의 무거운 회색 덩어리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예전의 내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아기 띠로 아기를 안고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책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정으로 나와 어울리는 삶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에리카 라인


'나는 지금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말 오전이다. 가까운 바닷가로 소풍을 가려고 준비가 한창이다. 바다로 놀러 가고 싶다던 첫째가 옷을 입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계속되는 실랑이에 엄마 아빠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며 짜증이 베어 나온다. 둘째는 둘째대로 울고 있다. 즐겁고 설레어야 할 소풍 시간이 고성과 울음으로 가득하다. 이미 하루 종일 나갔다 온 것처럼 진이 빠진다. 시작이 그러니 소풍을 가도 탄산빠진 사이다처럼 밍밍한 기분이다. 새 색구를 맞이하며 지쳐있던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회사일과 육아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신랑, 혼자만 다 누렸던 세상에서 동생에게 반이나 뺏겨버린 첫째까지. 피어나는 웃음보다 오고 가는 짜증과 칭얼거림, 커지는 언성이 늘어갔다. 그전의 여유 있고 편안했던 집과 가족이 그리워져갔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여유로운 마음

포근한 공간

온화한 애정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것은 시간이다.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거칠고 답답했던 숨을 고르고 부드러운 편안한 호흡을 내뱉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육아휴직' 네 글자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육아 휴직하면 어떨까?"

"지금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이 안될지도 몰라."

대화가 이어졌고 휴직이 안되면 퇴사라도 하자며 결론지었다.

"육아휴직을 원합니다. 안되면 퇴사하겠습니다."

신랑은 회사에 의사를 전했고, 그렇게 육아 퇴사를 하게 되었다.


2년 전 경기도에 살 때 첫 번째 퇴사를 하였다. 11년 정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6개월 정도 쉬었고 그 과정 중에 우리 가족은 속초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덧 속초에서 시간도 2년이 다 되어간다.


이번이 두 번째 퇴사다.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 번째는 결심이 더 쉽고 신속했다. 둘째가 돌이 될 때까지 6개월 동안 쉼을 가지며 시간을 누리기로 했다. 6개월 동안 돈보다 시간을 먹고살기로 했다.

엄마는 하고 싶었던 글을 다시 쓰고,

아빠는 아이들과 유대감을 더 쌓아가고,

첫째는 여유로워진 분위기 속에 허전했던 마음을 채워가고,

둘째는 언니의 괴롭힘보다 늘어가는 사랑으로 웃음꽃이 늘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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