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보이는 것들

5년간 미니멀라이프를 돌아보며

by 주하

32평집 맨 끝에 작은 방이 있다. 심플한 책상, 안락한 의자, 4단짜리 작은 책꽂이가 단촐한 서재라는 이름표를 이곳에 달아준다. 분명 몇달전 비움으로 여유공간이 많았던 책꽂이였는데. 어느새 또 책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가득 꽂혀있던 책들을 볼때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지난 주말 드디어 밀린 숙제같던 서재 정리를 시작했다.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바닥에 전부 깔았다.

분류 방법은 간단하다.

바닥에 깔린 책 한 권씩 들고 1 대 1로 마주한다.


'설레는가? 설레지 않는가?' 질문을 던진다.


설레는 책은 다시 책꽂이로,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책은 박스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1시간 정도 책 각자의 갈래 길로 들어선다.

분류가 끝나고 박스 속 책들은 중고로 판매하거나 나눔을 한다.

살아남은 책들은 언제고 다시 읽힐 날들을 기다린다.



책을 나의 손에서 정리 박스 속으로 옮길 때마다 마음의 소리가 분주해진다.


'내가 있으면 서재가 풍족해 보이고 더 근사해 보일 텐데? 나를 또 읽으면 분명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거야!'


라며 책들이 나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속삭이는듯하다. 그동안 꾸준히 비움을 해왔고, 다른 물건들에게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책에는 묻어 나온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속삭임은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소리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기 전에는 책을 사면 무조건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 정리는 아깝고 불필요한 행동에 가까웠다. 5년 전 미니멀 세계에 발을 디디며 처음으로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책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 마음 한편이 괜히 쓰리고 허전했다. 그렇게 정리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곁을 떠나는 책들도 늘어갔다.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이별한 책들의 부피만큼 물건에 대한 집착 또한 마음의 자리에서 떠나갔음을 볼 수 있었다.





물건에 대한 집착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고 결국 삶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비움이라는 단어가 내 생에 찾아오기 전에는 무엇이든 손에 움켜쥐려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어렸을 적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예쁜 옷들을 마음껏 입고 싶어서, 풍족하게 돈을 마음껏 쓰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쇼핑몰을 창업했다. 2년간 돈과 성공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며 일에 파묻혀 지냈다. 그렇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성공이라는 단어가 다가왔지만, 풍족해진 외부 세계와 달리 더욱더 메말라 있는 내면과 마주해야 했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아등바등 살아왔던가?


내가 정녕 손에 쥐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풍족한 물질과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왜 속은 채워지지 않는 걸까?'



바다 위에 길 잃은 부표처럼 이 질문들이 내면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책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법정 스님



친정의 큰 책 꽂이에 꽂혀있던 <무소유>를 꺼내 읽고서, 소유에 대한 이성적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건을 소유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은 잠깐일 뿐이고, 그만큼 물건에, 돈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구나'


무소유란 소유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며, 소유한 물건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구나.'



그렇게 물건을 하나둘씩 비워갔고, 그때마다 그것과 얽매여있던 나의 마음 또한 비워졌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

더 비싼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

소유한 물건들에 투사하고 있던 마음,

소유한 물건과 재산이 곧 나 자신이라고 믿었던 마음.


물론 이 일들은 단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 마음들은 나의 발을 붙잡고 있다. 지금도 그 과정 위에 있고, 비움의 길 위에 서있다. 다만 이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그 정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혀있던 책들이 반쯤 사라지고 비워진 여백을 바라본다. 이전보다 책에 들려있던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짐이 느껴진다. 빽빽하게 채워져있던 마음속에도 빈 공간이 늘어난다. 그 공간은 생의 본질을 간질거린다. 물건에 쌓여 가려져있던 삶 자체의 모습, 본연의 생생함으로 숨을 쉬게 한다. 고여있던 마음이 새로운 수혈로 맑게 살아난다. 그렇게 삶에 가까워지며, 나는 보다 더 내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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