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로 지역을 정하고 집을 보러 다녔다. 속초 어디서든 바다는 차로 10분이면 금세 도착한다. 더욱이 바다전망은 대부분 고층이다.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바다전망은 고려하지 않았었다. 이 집을 보기 전까지다. 좋은 집이 있다면서 부동산에서 계속 권하는 바람에 '한 번 보기만 하자' 하며 들어왔다. 탁 트인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바다의 풍경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첫눈에 매료된 마음은 공포증도 압도해버렸다. 그렇게 내 생에는 없을 줄만 알았던 고층에 살게 되었다. 365일 바다를 볼 수 있는.
속초에서 살기 전부터 속초를 좋아했다. 여행을 할 때도, 지역을 정할 때도 강릉이 아니라 왜 속초였을까? 생각해본다. 강릉은 속초보다 훨씬 크다. 크다는 것은 그만큼 바다도 멀리 있다는 뜻이다. 작다는 것은 그만큼 바다도 가깝다는 뜻이다. 답을 찾아보니 바다가 있었다. 언제든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바다였다.
20대 처음으로 떠난 파리 여행 첫날, 그곳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에게 물었다.
"이렇게 예쁜 에펠탑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정말 좋겠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자주 보니 이젠 아무 감흥이 없어졌어요."
꿈꿨던 도시 파리에서 막 여행의 설렘을 풀고 있는 나에게는 한국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대답이었다. '365일 바다를 보고 산다면 바다도 식상해질까?' 처음 이 집에 살면서 떠올랐던 질문이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함께해온 바다를 돌아본다. 바다는 언제나 하늘과 함께였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구름과 해, 달, 별들도 들어온다. 하늘은 바다에 그림을 그린다. 이른 새벽 동해바다에는 체리가 뿌려지듯 붉다. 가장 좋아하는 바다다. 해가 하늘 중간에 떠오르는 낮이면 바다에 은빛 보석들이 넘실거린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는 넓고 깊은 바다가 장엄한 푸른색으로 뒤덮인다. 운무가 가득할 때면 바다도 하늘도 안개속으로 숨어버린다. 태풍이 몰아치면 파도를 던지며 분노한다. 눈이 내리고 나면 바다에 차가운 고독이 내려진다. 무지개가 떠오를 때면 동화 속 배경 그림이 된다.
바다라는 것은 좋은 거군요.
그래,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요?
아마 넓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만일 저쪽에 세븐일레븐이 있고, 저쪽에 세이유 쇼핑센터가 있고,
저쪽에 파친코 가게가 있고, 또 저쪽에 요시카와 전당포 광고판이 있다면,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될 수는 없지 않겠어?
망망대해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건 참 좋은 거지.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2년의 시간 속에서 단 한 번도 같은 바다는 없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은 매일 그 순간의 그림을 그렸다. 식상해질 줄 알았는데. 더 좋아하게 됐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을 안아주기에. 바다가 좋다. 오늘도 일상을 여행하듯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