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짜장면을 더 맛있게 먹기로 했다

by 주하

월요일 속초의 아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1년 만에 서울 친정으로 가는 날이다. 둘째를 임신, 출산을 하면서 생긴 공백만큼 서울행은 설레었다. 달리는 창밖에는 초록의 산들을 뒤로하고 점점 높은 건물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 숲이 서울에 가까워짐을 표식 하고 있다. 본가에 가기 전에 뭐라도 사서 가려고 집 앞 대형마트에 들렀다. 1년 사이에 마트에는 못 보던 새로운 가게들이 늘어있었다. 키즈카페, 프랜차이즈 유명 가게들, 각종 맛집들까지.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거리에도 군데군데 새 옷으로 갈아입은 건물들이 유독 깨끗해 보인다. 그때 스세권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인기 있는 카페가 눈에 뜨였다. 스타벅스가 동네에 생기다니!


13년 전 그날을 기억한다. 집 앞 사거리에 대형마트가 개점하고 4층에 영화관도 문을 열었다. 언니와 부스스한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조조영화를 보러 간 첫날.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츄리닝에 슬리퍼 질질 끌고 걸어서 7분 만에 갈 수 있다니.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대형 극장이 집 앞에 생긴다는 것은 일상의 혁명이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제 스타벅스만 들어오면 딱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었다. 꼭 스타벅스가 아니어도 됐다. 나오는 선곡들이 좋고, 커피도 맛있으면 좋고, 2층으로 된 넓은 대형 매장에 자유롭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이면 환영이었다.

결혼 전까지 쭉 살았던 동네, 명일동에서는 대부분 도보로 가능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모여있는 주거 밀집지역으로 인구가 많은 만큼 편의시설도 주변에 가득했다. 전철부터 은행, 치과, 이비인후과, 학교, 도서관, 마트, 식당, 카페, 공원 등등 걸어서 10분 내에 거의 다 있었다.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어서 지역 이동도 편리했다.



'오래전 바랬던 스타벅스가 떡 하니 슬리퍼 권역에 들어왔는데 지금 나는 속초에 살고 있구나. 이 많은 편리함을 뒤로하고...'




지금은 슬리퍼 신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빵집, 작은 마트, 작은 카페, 작은 음식점들 몇개 정도다. 여기에 시립도서관과 바다가(책과 바다를 좋아하기에) 포함되기에 넉넉한 위안이 되고있다. 지하철은 없고 버스가 다니지만 배차간격이 멀어도 참 멀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타기에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차가 없어도 어디든 편히 갈 수 있던 명일동과 달리 차가 없으면 지내기 힘든 곳이다. 바다와 책을 애정 하는 마음이 커서인지 많은 불편함 들을 덮어주었다. 슬리퍼 신고 걸어서 책을 듬뿍 빌려오고 걸어서 바다에 가 가볍게 캔맥 한 잔 또는 커피 한 잔 하고 올 수 있으니까.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본가에서 가족모임이 끝나고 오는 길에 들리기로 한 하남 스타필드. 장거리 이동으로 지친 아가들 덕분에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대형서점과 1년 만의 재회가 무산됐다. 예전부터 큰 서점에 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다양한 책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작은 기쁨 중 하나였다.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눈앞에서 선물을 뺏겨버린 어린아이가 된 듯 했다.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보니 저녁 7시다. 중국집을 저녁으로 정하고 메뉴를 고를 때 남편이 질문을 던져온다. "짜장 먹을래? 짬뽕 먹을래?" 난 잠시 고민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짜장"이라 대답했다.

중국집 메뉴판 앞에 항상 고민을 한다. 하지만 대답은 매번 같다'난 짜장'. 가끔 짜장이 질릴 때(몇 년에 한 번씩) 짬뽕을 먹는다. 중국집에서 먹을 때면 다른 테이블에 놓인 짬뽕에 미련이 담긴 눈빛을 던진다. 그리고 '사장님. 혹시 짬뽕 국물 있을까요?!'라고 소심한 목소리로 묻기도 한다. 매운걸 잘 못 먹기에 어차피 2~3모금이 다이면서, 짬뽕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는 작은 몸부림이다.


서울 친정에 방문하고 집에 오는 길에 들리는 대형 쇼핑몰 안의 대형 서점은 나에게 짬뽕 국물과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듯이 난 속초에 살고 있으며 선택하지 않은 짬뽕이, 서울의 문명이 그리울때 짬뽕 국물을 홀짝이듯 들리는 나만의 위로 방법이다. 그 국물마저 눈앞에서 뺏겨버리니 메뉴판이 심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나는 왜 짜장면을 먹고 있는 건가?! 나는 왜 속초에 살고 있는 건가?!'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비우고 나니 그 대답을 알 것 같다.

짬뽕을 먹을 때는 언제나 한 두 젓가락 먹고 남겨버리고 상대방의 짜장면에 젓가락을 살포시 얹는다. 반면 짜장면을 먹을 때는 상대방의 눈치 볼일 없이 편하게 잘 먹는다. 내가 짜장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짜장면에 더 끌리는 나의 마음 때문이다.


결국 모든 건 마음의 문제이다.


내가 어디에 있던, 어느 곳에 살던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느 것에 끌리는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를 동경하기보다는 나의 선택을 오롯이 마주하고 '잘했어'라고 이야기해주면 된다. 지금의 선택에 만족하고 좋아하면 그뿐이다. 짜장면을 선택했고 싹싹 비워서 깨끗이 먹으면 그걸로 된거다. 짬뽕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짜장면을 더 맛있게 먹기로 했다. 속초에서의 시간을 더 맛있게 살기로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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