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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ㅅㅇ Jul 14. 2022

<관계> 잘 지내냐는 말에...

잘 지내냐는 말에 굳이 자동차로 답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빠, 나 차 탈 때. 아빠 자리에 앉고 싶어."

"지금은 안돼. 나중에 스무 살 되면 그때 가르쳐줄게."

"시아야, 아빠가 너 20살 되면 차 사줄게."

"와. 그럼 아빠 난 테슬라 사줘."

"테슬라? 너 테슬라 어떻게 알아?"

"아빠가 그랬잖아 다음 전기차는 테슬라라고!"

"그래... 시아야..."

"아빠 테슬라 아니면 다른 차도 괜찮아."

"그게 뭔데?"

"모닝. 아빠가 엄마한테는 모닝 타라고 했잖아."

"하하하"


시아는 자동차에 관심이 없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테슬라, 엄마에게 타라고 권유했던 모닝이 좋아 보였는지 모른다. 아내는 모닝이 싫다고 항의했다. 자기는 아반떼 이상은 타야 한다고 말했다. 차 2대가 부담스러워서 권유했던 건데, 시아는 두 차 모두가 좋은 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둘다 좋은 차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제일 좋은 차다. 


어린 시절 모 브랜드의 차를 타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광고가 생각났다. 그때 그 차는 성공의 상징이기도 했다. 소위 사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차를 탔던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차를 타는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 아닌 젊은 청년이었다. 야심 차게 그 차의 고객층을 젊은 청년들로 낮추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참신하고 세련된 광고였지만 생각할수록 씁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아버지는 르망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르망을 타셨다. 그리고 그 르망을 타시면서 외도를 하셨다. 르망의 그 당시에 그 이름대로 모든 남성들에게 로망이었을까? 그 차를 타며 아버지는 젊은 날의 로망을 채우셨던 것은 아닐까? 가족의 경제적인 부분은 뒤로한 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솔직히 스스로를 보면서 정말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극단적인 E(MBTI) 거나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심연, 그 민낯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스스로에게 무한 긍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 줄 수 있고, 그 모습에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겉모습이 아닌 속 모습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돈이나 차 같은 것이 아닌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관계. 돈으로 만들 수 없는 그런 관계 말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저 솔직해지면 어떨까? 사업이 잘 돼서 좀 기분이 좋다거나, 그래도 좀 불안한 게 사실이야라는 솔직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그러면 지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살다 보니 느끼는 것은 잘 사는 것은 무언가로 나를 치장하는 삶이 아니라 나다움으로 사는 것이다. 나다움은 퍼즐 조각 같아서 인생을 살면서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사람들, 상황들, 사건들을 통해서 말이다. 돈으로 발견할 수 없는, 인생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거울 속 당신을 바라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그리고 거울 속 당신은 잘 지내고 있는가? 껍데기, 가면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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