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아가 느끼는 특별함은 일상이 아닌 돈이 아닐까?
"자기, 나 출장 가."
"그래? 알았어..."
만삭인 아내가 출장을 간다. 해도 해도 너무한 회사다. 사실 육아휴직으로 1년간 이별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출장이라고 했다. 이해는 되지만 좀 석연치 않았다. 사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데려가야만 하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 그 민낯에는 혼자 시아를 봐야 하는 육아의 현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빠른 나이지만 당시에는 적정한 나이에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8년이 되어서야 아이를 낳았다. 중간에 유산도 경험했고, 사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30세 중반 나이에 육아하는 것은 모든 것이 어렵고, 버거웠다. 시아가 3살 즈음에 아내는 미국으로 출장을 갔었다.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진 시아는 매일 같이 울었다. 아니 같이 울었다. 아주 눈 밑 다크서클이 짙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계속 괴롭혔다. 그래서 혼자 시아를 봐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엄마와 아빠의 심리적인 거리는 좁혀지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아내는 출장을 갔다. 그리고 나는 시아를 봐야 한다. 등원부터 하원, 그리고 저녁 시간을 육아해야 한다. 시간 맞춰 시아를 하원하러 유치원엘 갔다.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
시무룩한 시아를 보며 나는 결단을 해야 했다. 엄마가 생각나지 않을 무언가를 말이다.
"시아야, 오늘 우리 토토로 보러 갈까?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아 아빠."
시아는 밝게 웃으며 좋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용산역으로 향했다.
시아는 알고 있다. 아빠와 둘이 있으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점점 영악해지는 시아의 여우짓은 날이 갈수록 폭풍 진화했다.
"아빠 오늘은 선물 안 사는 거지?"
"어? 그럼 시아야."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식당엘 갔다.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야무지게 먹고 후식 먹을 곳을 찾았다.
"아빠 밥 먹었으니까 후식 먹자."
"후식은 시아가 사주는 거야?"
"어? 아니 아빠 나 돈 쓰기 싫은데. 내 돈은 나중에 학교 갈 때 써야지."
"그래.... 알았어..."
자기 돈은 참 악착같이 아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시아가 좋아하는 토토로를 보러 갔다. 사실 토토로를 보러 가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널려있다. 시아는 캐릭터들을 유유히 구경하며, 관심도 없는 로봇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트렉 자동차 사이를 천천히 구경했다. 선심 쓰듯이.
"아빠가 좋아하는 자동차다. 아빠 신기한 게 많네. 아빠 이건 뭐야?"
"응. 자동차야. 탱크도 있고, 배도 있어."
"와 신기하다. 그럼 이제 다른 쪽으로 가보자."
시아는 자연스럽게 닌텐도, 레고, 플레이모빌 쪽으로 갔고, 그곳에서도 신나게 구경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토토로와 사진 찍고, 즐거운 게임도 했다. 시간이 제법 지났을까? 시아는 장난감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단서조항을 걸었다.
"아빠, 오늘은 구경만 하는 날이니까. 구경만 하자."
"응 그래. 시아야."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지 모른다. 나는 딸아이의 말에 감쪽같이 속았다.
시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설명해주고, 그토록 좋아하는 티니핑도 과감히 패스했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러 섰다. 그곳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 여기 티티채리 방탈출이 있어."
"그래? 그거 다른 데는 없었잖아!"
"맞아. 그런데 여기는 있네. 아빠 이거 오늘 사는 날 아니니까. 나중에 살까?"
"그래... 시아야 그럼 이제 집에 갈까?"
"아니 아빠. 잠깐만. 이게 난이도가 채리 2개짜린데 이건 좀 어려운 거네."
블라블라 블라블라
"시아야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야."
"아빠~~~ 이거 정말 해보고 싶다."
"안돼. 약속했잖아"
"힝... 맞아 아빠는 이거 안 사줄 거야. 그러니까 그냥 가자. 힝..."
울먹이는 시아는 아쉬운 듯 그러나 결단력 있게 돌아섰다. 그 표정과 뒷모습에 나는 또 무너졌다.
"시아야. 그럼 이거 아빠가 사주는 거 말고, 시아가 시아 돈으로 사면 어떨까?"
"아! 그러면 되겠다. 아빠 내가 내 돈으로 살게."
"정말 괜찮아? 너 나중에 학교 갈 때 쓴다면!"
"어? 아빠 이건 괜찮아. 이거 하나는 괜찮을 것 같아."
시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장난감을 들었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나를 위로하듯 한 마디를 던졌다.
"아빠 오늘은 엄마 없이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 나 안 울고 잘 잘 꺼야."
시아는 시아의 말 그대로 방탈출을 스스로 한글을 읽고 잘 탈출했고, 큐티도 스스로 잘하고, 뮤지컬 연습도 잘하고, 울지 않고, 잘 잤다. 그런데 뭔가 약간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왜 일까?
시아는 알고 있었다. 아빠와의 시간에 내가 무얼 할지 말이다. 아빠는 무언가 맛있는 걸 먹고, 무언가를 사줄 것을 말이다. 결국 그건 돈으로 하는 육아다. 일상이 아닌 특별하지만 돈을 들어야 주어지는 것. 물론 혼자 육아해야 할 때, 집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특별한 장소에 가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특별한 무언가를 사는 시간으로 육아를 하기도 했다. 불편한 마음을 돌아보며 과연 그것이 옳은가 스스로 반성해본다. 시아가 더 어릴 때는 키즈 카페였고, 이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이다.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지 돌아보게 된다. 결국 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그 기회비용을 돈으로 지불한 셈이다. 뭐 그리 큰돈이 아니라고 해도 시아가 느낀 특별함의 본질은 결국 돈이다. 돈을 써야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오늘 아내가 출장을 마치고 온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뭐라고 말할까?
"내 그럴 줄 알았어. 시아랑 또 거기 같구먼... 나중엔 돈 쓰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 그게 더 시아를 위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