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각은 어때?"에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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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회사원 사이 - 2
'네 생각은 어때?"에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
약 5년 전에 앞으로 내가 앞으로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다짐할 겸 나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선언한 적 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도 그래픽 디자이너도 아니다. 도시 전략가이다." 그때 어떤 낯선 계정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래서 도시에 대한 너의 생각은 뭐야?" 처음 듣는 이 질문은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게, 나의 생각은 뭐지?' 선언은 했는데, 도시 전략가로서 도시에 대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단어를 골라도 그것은 회사의 언어였지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동시에 당시의 나는 내 의견을 말하기에 잔뜩 주늑 들어 있었다. 회의 때마다 돌아가면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 그때마다 나의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고 나는 그때마다 숨고 싶었다. 당당하게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답답했다. 어떤 것에 대해 내 관점과 접근법을 텍스트나 말로 구성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것 같다.
수업 때 학생들에게 '네 생각이 어때?'라고 물으면, 아예 피하거나 본인의 생각보다는 이미 정해진 듯한 대답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자꾸자꾸 물어보니, 나중에는 신이 나서 본인의 생각을 술술 이야기하더라.
처음에는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뭐에 관심이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서 '네 생각은 어때'라며 묻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었다. '요즘 애들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내가 실수하지는 않을까, 너무 꼰대 같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수업 초반에는 수업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그리고 대답하기 쉬운 질문들, 그리고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요새 무엇에 최대 관심사 무엇인지', '최근에 배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 혹은 '이번 여름/겨울 방학 계획'등을 묻기도 하고, 수업이 좀 더 진행되고 제출 기간이 될 때엔 '도움이 되었던 조언' 같은 것을 묻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을 어색해하던 친구들도,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에 곧잘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각기 다 달랐다. 이 친구들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 학교 다닐 적이랑 비슷하네'라던가, '이런 흥미를 가지고 있구나'라든가, ‘오 나도 찾아봐야겠다’ 라든가.
1대 1로 이야기할 때, 어떻게 디자인을 발전시키면 좋겠냐고 내 생각을 묻길래, 내 의견은 한 사람의 의견이니, 대신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끼리 서로 피드백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선생인 나보다는 서로에게 이야기하기 훨씬 편하고 더 자주 이야기할 테니까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다들 날카롭게 시선으로 피드백을 너무 잘하더라. 내게 어떤 답을 정해주기를 기다리던 친구들도 점차 서로 의견을 교환하더니, 본인이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피드백을 받았고, 그런데 이런 결정을 이런 이유로 했다. 라면서 본인의 논리를 만들어가더라.
이렇게 계속 물어보고 말을 걸다 보면 총 15주 수업 중 약 8주에서 10주 즈음에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조곤조곤 너무 잘 이야기하더라.
다시 글 처음으로 돌아가, "그래서 너의 도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지금 돌아보면 내가 생각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그중 하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빈 종이만 바라보았다. 너의 생각은 뭐냐고. 한 글자도 적기가 어려웠다. 자꾸 어디서 본 듯한 단어들이 뒤엉켰다.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오늘 한일 내일 할 일들을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다. 그제야 그다음에는 천천히 내 생각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남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디 공유하기는 어려운 글이었지만 일단 계속 적었다.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에게 공유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글을 더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근육이 차근차근 생겼다. 아직도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긴장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이나 무언가를 보고 들으면 내 생각도 몽글몽글 생기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기 시작한다.
희한하게도, 내가 받았던 "그래서 너의 도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냐?"이라는 질문에 대한 그 기록을 더 이상 찾을 수는 없는데, 내가 꿈을 꾸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물어봐준 덕에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하는 연습도, 나의 도시에 대한 생각을 더듬더듬 한 걸음씩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네 생각은 어때?'에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물어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도 근육과 비슷한 듯하다. 자꾸자꾸 써서 단련시켜야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