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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Feb 20. 2024

디자이너의 글쓰기와 업로드까지

시각적 사고와 텍스트 기반의 사고 그리고 길 찾기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구불구불 커리어>를 주제로 첫 글이 올라간 것이 11월 23일이고 10번째 글을 다듬고 있는 오늘이 2월 9일(올린 것은 약 11일 후인, 2월 20일이지만)이다. 총 78일, 대략 11주, 3개월 정도가 지났다. 한 주에 하나씩 올리려고 했지만, 이 주에 하나를 올린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10개의 글을 모았다.


함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안 쓰고는 앞이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4년 반 전, 7년 만에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보편적인 방식과는 조금은 다르게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함은 4년을 무작정 달렸다. 게다가 이전에 하던 일과는 조금은 다른, 디자인 세상에서 벗어난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였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고마운 사람도 많이 만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면서 얻은 새로운 관점은 오히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풀리지 않던 의문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지기에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 그러나 디자인 세계에서 조금 벗어나고, 코로나가 터지고, 비대면 업무를 하면서 함은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고립은 ‘본인이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잘 달리고 있는지’, ‘다르게 달릴 방법은 없는 것인지’를 알 수 없게 하였다. 달리는 내내 본인이 하는 일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그러다 보니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고 다만 너무 뿌옜다.


4년 전에도 그리고 4년 동안에도 반복되는 질문들이 지겨웠다. 길이 보이지 않는, 길을 잃은 듯한, 본인을 설명할 수 없는 본인의 모습도 지겨웠다. 단단히 엉켜있는 머릿속의 실타래를 하나하나씩 뽑아보지 않으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짐작도 어려웠다.


일단 앉아서 모으기

머리가 복잡할 때는 글을 쓰라고 하더라. 글을 못 쓰겠으면, 못 쓰겠는 이유에 관해서 쓰라고 들었다. 글 쓰는 커뮤니티를 운영하신다고 함께 하자고 건넨 고마운 손길을 계기로 함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글쓰기 꿈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처음 50일 동안은 고작 펜을 들고 빈 종이를 하루에 한 번씩 마주하는 것이었다. 누가 읽을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머릿속의 단어들이 단단히 엉켜 뭐부터 꺼낼지 망설이다 끝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이후 100일이 되어야 머릿속에서 실타래를 뽑아낼 수 있었다. 덜컥 쏟아지는 생각 타래를 허겁지겁 주어 적었다. 처음에는 심리 상담사 선생님이 권해준 8분 동안, 그다음은 유튜브에서 본 대로 20분 동안 받아 적었다. 스스로에게 주었던 원인 모를 글쓰기의 부담감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약 1년 반 동안 생각을 종이에 내놓는 연습을 하였다. 누구에게 보여줄 만한 글은 아니었지만.


함이 글 쓰기를 어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글보다는 시각적으로 사고해 왔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익숙하지 않았다. 글과 시각이 사용하는 표현의 도구가 다른 것이 가장 크기도 하겠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시간'이었다. 글은 단어, 문장, 단락을 세심하게 조합하며 뜨개질하듯 하나하나씩 선형적으로 엮어간다. 반면, 시각의 시간은 비교적 비선형적 non-linear이다. 글을 쓸 때 너무 많은 단어가 한 번에 튀어나와 버려 성급하게 연결이 되어, 읽는 사람에게 어색한 문장이 되었다.


글을 적는 것이 어려웠던 두 번째 이유는 본인의 생각을 적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은 회사에서 연구보고서를 쓰면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다시 배웠다. 연구한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을 적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건설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누가 한 이야기, 혹은 기사나 책에서 본 것들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너의 생각은 어떤데?"라고 누군가 물었을 땐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혹은 너무 쉽게 일반화하거나 근거도 없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어투가 되어버렸다.


더하여, 모인 생각과 고민이 ‘나이에 맞지 않는 미성숙함으로 보일까 봐, 혹은 너무 당연한 고민일지 봐도 걱정도 되었다. 너무 솔직하게 쓰면 추후에 믿음을 잃을 기회가 있을까 봐도 걱정되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거르다 보니 적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심축이 될 주제 탐색

그래도 함은 생각을 공유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통해 더 깊은 소통을 하고 싶었다. 함 본인을 내어 주어야 타인도 그들의 생각을 공유해 줄 것만 같았다. '일을 먼저 저지르고 수습하자'라는 마음에 뉴스레터를 만들겠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걷고 계정도 만들었다. 주춤하는 사이에 소중한 이메일 목록도, 달력에 표시해 둔 글 쓰기 스케줄도, 드라이브의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이 소재, 저 소재에 관해서 쓰고 싶다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런데 막상 적다 보면, 복잡한 머리에 비해서 몇 줄 못 적고 소재가 뚝 끊겼다. 어떤 글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아서 누구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저장된 글에만 약 76개였다.  


저장된 글들을 주욱 내려보았다. '구불구불 커리어'라는 단어를 떠올랐다. 이 단어는 함이 적을 수 있는 주제 같았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다정한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고, 응원과 용기를 한가득 받아 타인에게도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적어보기로 하였다. 뭉쳐진 생각을 구불구불 커리어라는 주제로 한 번에 하나씩 풀었다.



그래서 얻은 것

단단히 엉켜있던 어지러운 생각을 찬찬히 하나씩 펼쳤다. 접혀있던 부분도 드러났고 흐릿했던 부분도 좀 더 뚜렷해졌다. 반복되는 패턴도 보였다. 끈질기게 놓지 못하고 있는 질문들이 무엇인지, 본인은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가 어렴풋이 윤곽이 보였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적어도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였다.


글쓰기 과정 및 구불구불 방 정리 과정


방을 정리하고 나니, '방이 이렇게 쓰였었고 무엇을 버려야 하고, 앞으로는 무엇이 필요하며, 이렇게도 쓰일 수 있겠다.' 정도로 방이 정리된 듯하다. 방 값이 올라가거나, 방을 더 잘 파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리된 방으로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듯이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게 정리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정리된 구불구불하게 엉켜있던 함의 방에서 찾은 것은 사실 뻔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미래에 또 구불구불한 길을 마주할 함을 위해서 혹은 누군가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정리를 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1. 구불구불한 길의 매력 찾아보자

정해진 길이 있다거나 이래야 한다는 것 생각 자체가 불안을 조성한다. (그렇다고 목표나 비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미래가 누구의 것이냐는 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이효리의 말마따나, '누군가 내 길을 정해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 따위도 버리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이래야 한다'라거나 '누구는 이렇다던데'라는 생각이 들면, '방황 총량의 법칙'을 생각해 본다. 누구든지 인생에서 길을 헤매는 때는 오는 듯하다. (누구 말마따나, '최악의 상황'은 사실 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대신 기록을 하면, 처음 계획과 그 결과를 비교 평가할 수 있다. 초기 계획이 예측대로 가고 있는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하면 적어도 그다음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방향성과 목표가 있다면, 변수가 생겼을 때나 충돌하는 의견과 자잘한 변화에, 주체성을 가지고 대응할 기준이 된다.

그리고 사실 머리가 복잡한, 그냥 그런 때가 있다. 그리고 이때의 고민이 양분이 된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겠냐고 누가 그러더라.)


2. 불완전해도 일단 발을 디뎌봐야 해

내재되어 있는 처음부터 완벽하려는 마음은 시작하는 데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게다가 완벽한 육각형 인간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완성은 없다. 다만, 발전하는 과정이다. 

공유할 수 있는 결과물이 없으면 말과 생각은 휘발된다. 글도 좋고 스케치도 좋고 뭐라도 좋다. 생각을 잡아두고 기록해야 한다. 마법과 같이 멋진 아이디어가 어느 날 번뜩 떠오르는 일 따위는 없다. 

보여주려면 마무리 지어야 한다.(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그 생각을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무리 지어 공유해야 피드백의 받고 결과물을 발전시킬 수 있다. 

막막하면 떠다니는 생각을 필터 없이 일단 모은다. 한 곳에 모아두면 흐름이 보이고, 그 안에 필터링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방향이 보인다.


3. 다시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한번 정리가 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방 한 번 정리한다고 영원히 깨끗한 것이 아닌 것처럼.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은 또다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을 배웠는지를 기록하고 평가하며 엉킨 타래를 푼다. 그리하면 아마도 그다음 액션 플랜을 생길 것이다.

과정중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지표 확인하기


추가 : 채집의 재미

소설 쓰는 친우는 소설을 쓰면 일상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소재를 언제 어디서든 채집할 준비를 하는 것은 모든 일이 소재 발견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고, 일상 하나하나가 흥미로워진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소중한 소재가 불쑥 나타날지는 알 수가 없다. 본인이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등장해도, 번뜩이며 소재를 채집하는 채집자의 자세로 대할 수도 있다. 무엇 하나 놓칠 수 없기에 일상이 풍요롭게 쌓이는 쏠쏠한 재미. 허허




10개의 글로 일단 이야기를 맺은 함에게 박수 짝짝짝. 이 글을 다 읽은 구불구불을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도 짝짝짝. 구불구불 하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가고 있는 모두에게 짝짝짝. 이다음은 구불구불 커리어 동안에 발견한 인사이트들,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했던,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다양성의 다양성, 협력 과정으로서의 디자인, 공간 속의 정보 기술, 도시 속의 연결과 같은 주제로 적고 싶다. (구불구불 준비하고 있다.) 


읽으면서 어떤 생각하고 계신지 그리고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너무 궁금해요. 하시고 있는 생각 언제든지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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