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길에서 외우는 주문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책이건, 영화건, 프로젝트를 진행하건, 시작할 때는 시작할 때의 긴장감과 기대감에서 오는 설렘이 있다. 처음에는 처음이라 궁금해서 환영받는다. 운이 좋다면, 던져진 질문을 어떻게 답하는지 궁금하여 중간까지 그 설렘이 계속되기도 한다. 마지막은 던진 질문의 결론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반면, 마지막 바로 전은 노출이 가장 적게 되는 부분이며, 가장 지지부진해지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함은 <구불구불 커리어> 글을 10개로 계획하였고, 이 글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글이다. 그동안 쌓아온 하고 싶었던 것들도 이미 쏟아내었다. 마무리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인내심도 에너지도 가장 부족해지는 시기이다. 마음은 이미 결승 골 안에 있는데 현실에선 아직 거리가 남아 있다. 그런데도, 글을 끝맺음할 설렘을 잠시 눌러두고, 일단은 꾸역꾸역이라도 마지막에서 두 번째 글을 적어야 한다. 마무리하지 않으면 뭐도 안되었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급이고 본인을 위해서 하는 일이더라도. 함은 마무리하고 결과물을 바라볼 본인을 상상하면서 힘을 내본다. 미래의 본인에게 창피하고 싶지 않다.
완벽보다는 뭐라도 마무리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시작들이 흐지부지되었는가. 물론, 모든 시작이 완벽하게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라고 했지만, 칼을 뽑았는데 영 아니면, 굳이 무를 베는 것은 에너지 시간 낭비이다. 하지만, 끝을 내든 내지 않든 마무리를 할 필요는 있다. 어떤 칼을 뽑았을 때 어떤 것을 베는 것이 좋았는지, 혹은 좋지 않았는지와 같은 무엇을 얻었는가 정도는 정리가 되어야 다음에는 칼을 다르게 뽑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공정을 가볍게 해서라도.
이때, 오히려 '완벽주의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질질 끌다가 숨어버리게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때 '완벽주의자'를 자청했던 함이 학교 다닐 적에 종종 밤새 과제를 해놓고서는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정작 수업을 가지 않거나 늦게 갔다. 에너지와 시간은 죄다 쏟아부어 놓고, 피드백은커녕 게으름뱅이라는 오명에 지각쟁이까지 얹어졌다. 투자한 에너지와 시간의 본전도 못 건졌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무리가 중요한 이유는 마무리를 해야, 일단 내밀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잘하고 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창피를 당하는 것까지가 경험인 거죠. 저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라고 이슬아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무리를 해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보여줘야 자란다.
이슬아작가는 혼자서 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면서, 마감 약속을 일부러 만들었다고 한다. 함에게도 혼자 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참고 사례도 도움이 되지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가장 비슷한 고민을 동시간에 하고 있는 동료이다. 이것은 학교뿐 아니라 회사조직도 프로젝트도 혼자 하는 일도 동일하다. 상사에게 묻고 도움을 구하기는 쉽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동료에게는 어차피 상호이익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도움도 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의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함은 개인 프로젝트를 하도록 수업을 기획하였는데, 어느 정도의 개인의 영역에서 작업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기획에는 학생들이 개별로 본인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학생들이 고립되었고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에게 피드백 요청도 많아졌다. 그다음 수업부터는 개인 작업이지만, 팀별로 피드백으로 주고, 작업을 항상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환경을 만들어 놓으니 서로의 작업에 대해 논의하고 도와주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수강생이라면 누구든지 서로의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여, 서로의 성장과정도 볼 수 있었다. 한 학기 15주 정도가 지나면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학생은 매주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던 나오지 않던 꾸준히 발전시킨 친구와 번복할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무언가 만들어보며 끈질기게 질문하는 친구였다.
함은 항상 동료를 구하는 중이다. (동반자 하실 분?)
처음부터 방향이 분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은 이것저것 모아 본다. 그러면 방향이 보이고, 목적이 보이면서 뾰족해지면서 모은 것을 다시 거른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라고 함은 생각했다. 그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축적하는 것. 축적을 하기 위해서는 마무리하는 것. 마무리를 해야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같이 볼 수 있다. 마무리해야 다음이 있다. 구불구불한 것 사이에서 뭐라도 확실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더.
한때 목적을 잃은 것과 같은 결과물을 위한 결과물에 거부감이 함에게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만드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도 결과물은 중요하다. 축적해야 패턴이 보인다.
구불구불함 속에서 성공을 욕망하는 함은 송길영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다름을 추구하다 보니 기괴함이 나온다. 다음에서 유용을 추구하려면 시도가 많아야 한다.”
함은 한 작가의 연대기를 전시한 전시를 좋아하는데, 그 작가가 어떻게 유명해진 작업까지 도달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그리트도 피카소도 그들의 작업을 초기 작업부터 따라가다 보면, 참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별로인 작업도 많고 남들이 따라도 많이 그려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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