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너가 하고 싶은 것이 뭔데?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내가 지금부터 10년 노래 연습을 해. 10년 작곡 연습을 해. 그럼 난 정말 대단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 거야.
마음속의 숙제라고 생각했던 걸 조금씩 해나갈 때의 기쁨이 돈을 몇 억씩 벌 때보다 기쁨이 좀 있더라고
- 이효리 '짠한 형 신동엽'에서
데뷔한 지 26년 된 대한민국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수가 보컬 연습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함도 마음의 숙제에 대해서 말할 용기가 생겼다(물론 함은 몇억을 벌어보지는 못했고 우리의 효리언니 옆에 감히 붙일 수는 없지만, 그건 별개라고 생각하자). 함의 마음속 숙제는 반영구 공간 설계이다. 공간 디자이너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공간'을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니,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공간이다. 하지만 '설계'는 가까우면서도 먼, 닿을 듯 말 듯 한 존재다. 대학교에서 4년 내내 공간 설계자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공간 디자인은 학생으로서 구현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니, 3d 프로그램으로, 스케일 모형만으로 공간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4년 내내 모형만 돌려봐서 그런지, 직접 만들 수 없다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정해진 공간 없이는 혼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은 크기는 한계가 있었기에 공간 설치 혹은 임시 공간이 최대 크기였다. 그렇게 반영구 공간 설계에 닿을 듯 말 듯 주변만 뱅뱅 돌았다.
동선의 축척, 조닝(기능별로 공간의 구역을 나눔), 운영 방식이 실물로 구현된 모습이 함에게는 물리적 공간 디자인이었다. 그렇기에 함이 이해한 ‘공간’은 여러 요소가 관계를 맺고 흐르는 시스템이었다. 함이 생각하기에 가장 비슷한 영역이 건축 회사에서 하는 ‘앞으로 이런 행동양식이 예상되니 이런 행동을 뒷받침하는 구조물의 구성이 필요합니다’와 같은 연구였다. 그리고 함이 지원한 여러 건축 회사 사이에서 유일하게 함을 반겨준 곳이 도시전략회사였다. 회사에서는 건물 설계를 결정하기 전의 맨 앞 단계인, 그럼 어떤 목표를 위해서 어떻게 접근하는 건물이 필요한지와 같은 것을 논의하는 일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설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럼 직접 설계를 해보면 되지 않겠냐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같이 해보자고 건축 실무를 하는 다정한 건축가들이 함에게 손을 건넨다. “어떤 것을 설계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함은 다시 사고의 회로가 팽그르르 빠르게 회전하였다. 말로만 이것저것 필요하고 하고 싶다고 했지, 실제로 하나를 딱 정하려니 어느 것 하나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만 했다. ‘주택’, ‘도서관’, 혹은 ‘쇼핑몰’이라고 답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 딱 하나를 잡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늘어가는 상업 공간의 공실률, 주거공간의 미분양과 빈집에 대해 적은 기사를 떠올렸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들도 잘 활용되지 못 마당에, 왜 새로운 공간을 또 만들어야 하는지 스스로 설계의 정당성이 생기지 않았다. ‘지역 생태계 활성화’, ‘열린 공간’이라고 내세운 쓸쓸한 건물들을 떠올랐다. 그 공간들이 약속했던 것과는 다르게 공간은 의도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비어 있거나, 포토존 되어 방문객으로부터 1-3분 정도의 짧은 관심으로 연명하는 건축물들을 본다. 처음 만들었던 목표를 현실화하는 데에는 건축환경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마음이 삐죽 들어선다. 아무튼 설계는…?
삐죽 들어서는 마음 때문에 ’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과 ‘건물이 다른 건물과 만드는 생태계’로 함의 마음이 흘렀다. “왜 자꾸 부수고 높아지려고 하는가? 어째서 현대 건물의 생명은 30년인가?”라는 추상적이고 큰 질문이 함의 머릿속을 자꾸 두드린다. 벽식구조 대신 구조식을 택했다면 건물이 더 오래갔을 터라고 하는 기사가 1997년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발행되는 것을 보니, 문제는 마냥 기술이 아닌 것 같다고 함이 말한다. 건축 기술이 무척이나 발달했다는 기사 옆에는 최근 완공된 아파트의 하자들에 대한 기사들을 마주한다. 보이는 부분인 아파트 미관을 만족시키려다가 보니, 정작 건물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인 안전, 층간 소음에는 하자가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함은 설계 과정 내의 의사결정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런데 이건 아파트…그래서 함이 만들고 싶다는 공간 설계는?
마음이 거대한 문제들 사이에서 헤엄친다. 그러다 보니, 질문에 답할수록 문제는 너무 거대하고, 함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법이 그렇고, 금융이 돌아가는 방식이 그렇고, 지을수록 경제가 성장하는 경제구조가 그러하다고 하더라. 자꾸 문제의 크기가 너무 커져 버린다. 함은 본인이 법조인도 아니고, 금융가도 엔지니어도 아니고, 커다란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무튼 숙제는…?
함은 다시 돌아와 어떤 설계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결국 디자이너는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를 되새기면서, 보여주고 싶은 공간으로 접근해 보기로 하였다. 결국에는 만들고 싶은 것은 공간이고, 설계는 그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을 나는 만들고 싶지?”라는 막연한 질문에 함은 시간을 거쳐 숙성될 수 있는 공간을 막연하게 꿈을 꾼다. 숙성된 공간에는 이야기가 쌓인다. 여러 사람과 함께 쌓아온 이야기 자체가 공간은 그 자체로 지속할 힘이 생긴다고 함은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은 거점이 되어 다시 사람을 모아준다. 그럼 ‘지속할 힘은 어떻게 만들지?’라는 질문에 함은 그렇지 못한 공간들을 상상한다. 기회비용이라던가 고정비용이 큰 곳은 다양한 실험을 하기가 어렵다. 함은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도 또한 소수만 공감하는 공간도 다양성이 자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양성이 부족하면 금방 시들기가 쉽다.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몰려있는 공간도, 정보가 투명하지 않은 공간도 지속해서 확장하기도,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그리고 참여하기도 접근성도 어려운 곳은 소수에게 책임이 가기 쉬운 구조로 버거워지기도 쉽다. 물론 여기서 ‘더 지속 가능하기 위한 질서’와 ‘모두에게 열린‘ 상호 합의를 보며 공감하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함은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간을 열고 함께 만들려고 할수록 공간은 다수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함은 전제한다. 공간으로부터 받는 혜택이 가시화될수록 공간에 기여하는 사람도 지속해서 기여할 수 있다. 공간을 중심으로 한 기여는 쌓여서 지식이 축적되고 노하우가 된다. 공간이 지속 가능해질 힘이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성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한다. 다양성이 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하면 된다. 이 공간은 예술가, 디자이너와 같은 창작자만 오는 것이 아닌, 양조가, 간호사, 금융가, 엔지니어, 법조인, 디자이너, 정책연구가 등등이 모두 함께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세대가 함께 모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공간의 정체성과 줄기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함은 아직 고민 중이다. 별개로, 치솟는 부동산에 치이지 않고 공간이 스스로를 유지하면서 공간에 하는 사람에게 정당히 보상하면서 자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본다. 다시 또 설계랑 멀어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드디어 만들어 보고 싶은 공간이 생겼다. (공간이 아니라 조직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공간은 곧 조직을 담는 것이 아닌가?)
함의 숙제에서 시작해서 오답노트를 거쳐 장래희망으로 끝난 그런 이야기.
그전까지는 그림물감과 캔버스를 제대로 준비해 그림을 그렸는데 그 틀에서 점점 벗어났어요. 그러면서 주변 물건이 모두 그림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 그때가 처음 발을 들인 시점일 겁니다. 모든 것을 차별 없이 보게 되었어요. 하나하나 신선하더라고요. 재떨이도 뒤집어서 보기도 하면서 말이죠.
<노상관찰학, 2023> p48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언제든지 공유해 주세요.